"지금부터 모든 업무는 저희 관리하에 들어왔습니다"

정리대상은행 영업마감직후 경찰과 함께 전산실에 들이닥친 금융감독위원회
와 인수은행 직원들의 일성이다.

금감위가 국민 주택 신한 하나 등 4개 인수후보은행과 공동으로 작성한
인수매뉴얼에 따르면 은행 정리는 이렇게 전산실 점령으로 시작된다.

은행 자산을 보호하기위해서는 전산 장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시간 뒤 전국 본점과 영업점에도 점령군이 속속 투입된다.

이들은 출입문과 옥상을 폐쇄하고 소화장비까지 점검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정리은행 직원들의 과격한 행동과 예금주의 무단침입과 난동을 막자는게
주목적이다.

이 무렵 금감위 이헌재 위원장 등은 긴장된 표정으로 내외신기자회견을
갖고 금감위 조치사항을 발표한다.

이미 정리대상은행에 대한 점령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된 뒤다.

금감위는 미리 인수은행장들에게 정리은행을 통보할 계획이다.

매뉴얼은 순조로운 점령을 위해 철통같은 보안을 지키라는 당부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은행은 서둘러 자산부채인수를 위한 비밀 이사회를 열고 금감위
결정을 따르기로 한다.

금감위 상황반은 밤새 불을 밝히고 사태진전을 점검한다.

이튿날 아침.

정리은행 본점과 영업점에는 영업정지를 알리는 공고문이 게시된다.

365일 코너같은 자동화점포도 예외가 아니다.

철야작업을 해 제작한 것이다.

"OO은행(정리은행)은 금융감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98년O월O시를 기해
OO은행(인수은행)으로 계약이전됩니다.

기존 모든 거래고객께서는 지금과 같이 불편없이 계속 거래할 수 있으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추후 영업재개일 등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업점으로 문의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은행폐쇄 소식에 놀란 예금주들이 몰려들자 한 직원이 "안심하고 돌아가라"
는 메가폰방송을 계속 해댄다.

금감위는 일정금액 이하의 입출금을 위한 전용창구도 개설할 계획이지만
예금주 불안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어쨌든 이 창구는 은행감독원 규정에따른 영업소 신설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

금감위도 신문에 비슷한 내용의 공고문을 낸다.

금감위는 최소한 3일간의 "금융휴무"(공휴일 포함)를 실시할 예정이다.

한 전산전문가도 자료를 이전받고 자산실사에 필요한 기초데이터를 확보
하는데 3일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휴무기간은 단축할수록 금융시장에 충격을 덜 줘 좋다.

금감위 관계자는 그러나 "처음 해보는 일이라 며칠이 될지 장담하기 어렵고
예상외로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업정지기간중에는 자산실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인수은행에 의한
영업재개대책도 마련될 전망이다.

인수업무는 은행안에서 이뤄진다.

인사팀은 정리은행의 직원들에 대한 해고절차를 밟고 일부 필요한 인력을
계약직을 골라쓰기 위해 "직원정리계획"을 작성한다.

정리대상은행의 차장급이상 간부는 "명령휴가"를 받아 집에서 대기해야
할 듯하다.

기획팀은 자산부채이전(P&A) 가계약서 체결을 맡고 이를 승인받기 위한
임시주총 소집도 준비한다.

총무팀은 영업재개에 대비해 업무용비품과 소모품을 준비하는 등 지원업무
를 맡는다.

모든 일은 금감위와 은행내 부행장 전무를 위원장으로 설치된 인수추진
위원회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

인수은행은 영업을 재개한뒤 미리 정한 수순에 따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가계약에 대한 승인을 받고 이어 본계약을 체결한다.

그때부터는 정리은행은 법인등기에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 허귀식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