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기업 명단을 미리 보도(본지 18일자)하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만의 하나 오보라도 낼 경우 해당기업은 물론 기자 본인에게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17일 오전까지만 해도 살생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퇴출될 것이라던 기업이 용케 살아나는가 하면 안전지대에 있던 기업이
퇴출로 분류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럼에도 명단을 게재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리스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업체들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심사대상에도 없는 기업이 주식시장에선 퇴출업체로 입방아에 올랐다.

주가가 곤두박질 했음은 물론이다.

루머에 포함된 기업의 직원들은 일손을 놓은채 신문사에 전화하기 바빴다.

불안심리가 확산되며 금융시장은 연일 휘청거렸다.

게다가 금융감독위원회는 주말께로 발표시기를 미뤘다.

팽배한 공포감을 덜어주기위해서도 명단공개는 필요했던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문제가 됐다.

은행을 비롯한 웬만한 기관투자가는 맞든 틀리든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일부에선 퇴출기업 정보를 활용, 주식을 처분하고 대출금을 회수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 하청업체 등은 그런 정보로부터 차단돼 있었다.

끝으로 5대그룹 퇴출기업은 그룹차원에서도 정리하기로 분류했던 기업들
이었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굳이 퇴출로 분류하지 않아도 정리될텐데 왜 살생부를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안개가 걷혀서인지 이날 주가는 하루내내 오름세를 탔다.

이성태 < 경제부 기자 ste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