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정략적인 줄다리기로 후반기 원구성조차 하지 못해 "식물국회"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없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도 50살이면 지천명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데 지난달 30일로 문을
연지 만 50년이 된 우리 국회는 공교롭게도 50돌 기념식이 열린 그날부터
기능이 정지돼있다.

15대 국회 전반기 의장단및 상임위원장단의 임기가 만료됐으나 여야가
후반기 원구성을 위한 임시국회 운영 문제를 놓고 아전인수식 주장만을
내세워 정국을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정계개편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7월21일로 예정된
7개 지역의 재.보궐선거와 8월로 가닥이 잡힌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각 계파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여권에서도 또다시 내각제 개헌문제로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힘겨루기가 재연돼 6.4 지방선거후의 정치판은 복잡
하게 얽히고 설키는 형국이다.

민생문제나 정치개혁은 아예 뒷전으로 밀어놓은채 여야를 막론하고 당리
당략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한달전 국회운영위가 의원
세비 20% 인상을 관철시킨 내년도 국회자체예산안을 소문없이 통과시키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국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게 세비인상의 논리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국회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총리인준거부에서 시작된 야당의 정부여당 발목잡기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고위층 눈치보기에 바쁜 여권의 정치력 부족은 여야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는 더이상 "IMF 무풍지대에서 놀고 먹고 싸우는 곳"으로 남아있어서는
곤란하다.

각 분야의 군살빼기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야당은 국회직에 연연해
국회제도개혁을 방해해선 안된다.

정치개혁은 국가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중 하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당은 더이상 "우보전술"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국회법개정협상을 야당의원 영입을 위한 시간벌기로 이용해서는 진정한
정치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정계개편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국회의 기능은 살려놓고 봐야 한다.

과반수의석을 확보할 때까지 원구성을 늦출 속셈이라면 야당의원 빼내기가
순조롭지 못할 경우 식물국회는 언제까지 지속돼도 상관없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의 국가경제위기를 한국정치가 지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만연된
부정부패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정치개혁없이 IMF체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정치개혁은 여당의 국회의석을 몇석 더 늘린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주체들이 환골탈태의 자세로 스스로의 체질
개선을 통해 정치생산성을 높이는데 앞장서주기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