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서편제 정신의학적 분석 (하) ]

조두영 < 서울대 의대교수 >

송화는 어릴때 고아가 돼 아버지뻘 되는 중년남자 총각에게 양육됐다.

20대에 수양아버지를 잃은뒤 남도를 방랑하면서 술집이나 음식점 주인인
아버지뻘 되는 남자들과 만나 몇달 또는 몇년씩 살다가 헤어지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니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늙은 홀아비들의 한시적 배필"이다.

그녀는 자기 또래의 남자와는 정상적인 이성관계를 맺지 못한다.

송화는 자기를 실명시킨 수양아버지 유봉을 용서한다.

왜 용서했을까.

첫째는 그녀의 피학성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유봉의 사랑이 비정상적이며 자신이 대용물로서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녀는 유봉을 떠받들고 순종적이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서서히 꺼져가는 유봉의 생명을 말없이
지키면서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향해 소리를 한다.

그런즉 이들 두사람 사이는 가학.피학성으로 맺어져 있다.

어느 일방이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이지 않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학.피학적인
상황이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송화쪽이 더 피학적이다.

둘째 그녀는 분노와 복수심에서 오는 공격성을 비생산적인 것에서 생산적,
창조적인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을 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잘 섞어 그 한을 딛고 넘어서는 경지에서
소리다운 소리가 나온다"는 말이 이런 창조성 공격성으로 두고 말함이다.

셋째 그녀의 깊은 무의식에 있는 유기공포 때문이다.

그녀는 고아로서,유봉이 어려서부터 키워온 여자였기에 "버림받음"의
재연에 대한 크나큰 두려움이 있었다.

"네가 나보다 동호를 더 끔찍히 여긴다면 나는 너를 버릴 것이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그녀는 크면서 유봉에게서 받아왔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가 부르는 "심청가"는 그 숨은 의미가 크다.

심청전의 두 주인공은 늙은 소경 아버지와 딸로서 부녀관계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그 주제임이 이미 밝혀져 있다.

영화에서는 특히 심청이 아버지를 하직하고 인당수로 떠날 때와 부녀가
상봉할때의 정황이 송화의 처절하게 숨넘어가는 듯한 "아이고, 아버지..."
소리로 2번 표현된다.

소리하는 송화는 동호의 장단에 맞추기는 하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영화 "서편제"는 유봉과 송화 부녀간의 애틋하고 처절한 사랑,
"심청전"의 심봉사와 딸 심청, "심청가"에서의 딸의 목메인 "아버지"소리라는
3중 장치로 딸이 지닌 외디푸스적 상황을 너무도 확실히 나타내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