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M 그램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김대중 대통령의 이번 미국방문은 큰 의미를 지닌다.

정권인수이후 클린턴 미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인데다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있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워싱턴을 방문하는 김대통령의 과제는 두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한 협력요청과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양국의 정책조율이
그것이다.

이중에서도 급선무는 경제문제일 것이다.

한국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많은 미국인들은 한국이 그렇게 쉽게 무너진데
대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한국의 속모습에는 위기를 초래할만한 요인들이 내재해
있었다.

모든 경제행위가 수익성중심의 자본주의적(capitalistic)사고에 의해
이뤄졌다기보다는 정부주도에 따라 과시와 겉치레를 중시한 면이 많았다.

금융기관들도 리스크나 신용상태보다는 청탁과 지시에 따라 자산을
운용해왔다.

근로자들 또한 타협과 협력보다는 생산성을 무시한 임금인상 요구, 시위와
파괴등 호전적 모습만을 보여줌으로써 한국근로자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민간부문보다 더 독소적인 요소는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규제였다.

이 모든 요인들은 한국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추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을 방문하는 김대통령의 과제는 "신뢰회복"이라는
단어로 요약할수 있다.

한국이 처한 위기는 경제위기전에 "신뢰위기"(confidence crisis)다.

한국인들은 교육을 중시하고 근면하며 창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네시아나 태국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위기탈출
잠재력과 능력을 동시에 갖고있다.

대외적으로 그런 좋은 자질을 제대로 세일즈하지 못하고 있을뿐이다.

김대통령이 이번에 해야할 일은 한국인들의 우수한 자질들을 큰 제스처와
큰 목소리로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외교활동이다.

김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대북문제에 관한 유연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도됐다.

특히 대북제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은 매우 전향적인 제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들어 파키스탄이나 인도의 핵실험으로 미국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도 북한문제를 푸는데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핵문제를 두고 북한과 미국은 오랫동안 실랑이를 벌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회내의 보수적인 목소리가 적지않을 뿐 아니라 쿠바 이란 이라크
문제 등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지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의 이번 미국 방문은 북한문제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방문기간중 입장표명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김대통령은 또 미국인들이 구체적 경제위기 타개책을 듣고 싶어하는
열망이 강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개혁은 어느 강도로 언제까지,그리고 어떻게 할것인가등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대안들을 제시해줘야 할 것이다.

노사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입장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공기업과 대기업 매각은 어느 강도로 추진할 예정이며 또 매매가 이뤄질수
있는 법률적 여건은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제대로 밝혀줘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하루 아침에 이룰수 있는 것으로 약속하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대통령은 미국인들이 인내를 갖고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한국인들의
노력을 지켜봐 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이다.

멕시코 경험에 비춰 위기를 탈출하려면 적어도 3년, 늦으면 10년이
걸릴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득시켜야 한다.

국제경제연구소내에서도 한국이 위기를 벗어나는데 얼마나 걸릴 것인가를
놓고 프레그 버그스텐 소장을 비롯한 거의 모든 연구진들이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버그스텐 소장은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3년에서 5년정도 소요될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인들의 자생력을 공감하는 필자는 3년정도 걸릴 것이라는 쪽에
가담했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이제 모든 짐은 한국인들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미국은 한국이 잘 나가는 경제와 우호에 입각한 좋은 우방이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 탈출의 단초는 한국인들이 쥐고있다.

김대통령은 이번 워싱턴 방문을 한국인들의 의지를 모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돌파구 마련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