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말 국제통화기금(IMF)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결합재무제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할 당시만해도 재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도입 방침을 밝힌지가 이미 오래였기 때문인지
"그런가 보다"하는 분위기였다.

결합재무제표를 위시한 새로운 회계제도의 변화가 가져올 위력을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재계는 그러나 새정부가 결합재무제표를 상호지급보증금지와 함께 가장
효과적인 구조조정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월 30대기업군에 대해 99사업연도부터 결합재무제표를
의무적으로 작성토록 규정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부터 각 그룹엔
비상이 걸렸다.

"정말 하는가 보다"하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각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대기업그룹의 준비는 크게 세가지 방향으로 나눠진다.

어떤 경우든 과정과 결과는 극비에 부치고 있다.

결합재무제표에서 나타난 결과가 갖고 올 파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회계법인에 올해부터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맡기는 경우다.

극소수의 상위그룹들이 이렇게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 기존에 감사를 맡아온 회계법인에 맡기고 있다.

두번째 경우는 별도의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이 팀에 외부 회계사를
임시로 고용해 공동작업을 벌이는 형태다.

대부분 그룹들이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세번째 경우는 기존 사내 회계팀 등에서 이제까지 알려진 결합재무제표
방식을 원용,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해보는 경우다.

하위그룹들이나 계열사 구조조정을 한창 진행중인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대기업들은 이처럼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준비하는 동시에 대폭적인 경영관행
개선 작업에도 나서고 있다.

더 이상 편법이나 옛 관행이 통하지 않게 된 만큼 회계제도 변경이 회사
경영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이 이처럼 경영관행 개선을 서두르는 것은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그룹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결합재무제표를 만들어 본 결과 그룹
매출액이 35%나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25% 넘게 감소했다.

이 그룹 관계자는 "줄어들 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외부회계법인에 의뢰,해외법인까지 포함시켜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해본
또다른 그룹의 경우엔 각종 경영지표가 "최악"수준으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들이 특히 주력하고 있는 것은 내부거래의 근절이다.

계열사뿐 아니라 관계사와의 거래까지 포함되는 결합재무제표에선 내부
거래가 경영실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열사라고 값을 깎아주고 또 반대로 좀 비싸더라도 어려운
계열사에서 물품을 구매해주던 풍토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와 연관된 것이 각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의 강화다.

각사가 그룹 외부에서 최적의 사업파트너를 찾아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훨씬 중요한 과제가 됐다.

기업들은 이와 함께 각 계열사와 관계사 등 실질적 지배관계에 있는 모든
회사의 재무제표 양식을 통일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현재는 각 업종별로 같은 용도의 돈이라도 계정과목을 서로 달리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 상태에서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했다간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

일부 그룹은 그동안 각 계열사별로 각각 거래했던 회계법인을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2중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다.

결합재무제표선상에서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판명되는 계열사나
관계사는 통폐합 매각 등의 방법을 통해 정리하는 구조조정작업도 가속화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이처럼 부산하게 움직인다고 해서 결합재무제표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는 건 아니다.

모그룹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아직 시도되지도 않는 결합재무제표를
그것도 신인도하락과 외형감소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우리가 왜 제일 먼저
해야하느냐"며 불만을 털어놨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의 경영투명성제고를 위해 정말 결합재무제표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 삼일회계법인에 컨설팅을 의뢰한 것도 재계의 이같은
불만에 따른 것이다.

회계혁명의 당위는 인정하지만 지나치게 속도가 빠르다는게 재계의 일반적인
정서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