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그룹이 끝내 해체되는 비운을 겪게 됐다.

마지막까지 모기업인 제과를 중심으로 재기를 꾀하던 "해태"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박건배(50) 회장 등 경영진들이 "53년의 역사를 지닌 제과만큼은 토착기업
으로 남기고 싶다"며 강한 애착을 표명했으나 채권은행단의 결정으로 그나마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해태그룹은 사실 지난해 11월 그룹 부도이후 제과 등 주요 계열사를 처분
하는 작업을 비밀리에 추진해 왔다.

그룹해체라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포석이었다.

제과만큼은 살리고 싶었지만 그룹해체라는 극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제과도 팔아야 한다는 고육지책에서다.

그룹은 이에따라 다국적 식품업체인 네슬레와 해태제과 매각에 대한 협상을
벌여 왔다.

해태는 1조원을 요구했고 네슬레는 7천억원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는 그같은 차이를 좁히기 위해 노력했으나 합의에 실패, 채권은행단
의 제과매각을 포함한 그룹해체 결정을 막는데도 역부족이었다.

그룹은 음료부문매각도 추진해 왔다.

펩시콜라 코카콜라 등 여러 기업들과 협의를 벌였으나 확정지은 것은 없다.

해태는 당초 지난해 두산그룹이 코카콜라에 생산설비및 판매망을 4천5백억원
에 매각한 사실을 들어 적어도 이 금액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인수희망 외국사는 2천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을 제시, 결론을 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은행단이 그룹해체 결정과 함께 부채 8천억원을 탕감해 주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제과 음료 유통 등 주요 계열사의 해외매각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은행단은 또 계열사 처분이 완료될때까지 한시적으로 박 회장의 자리를
보장하는 방안도 마련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급작스런 경영권 공백이 계열사정리에 걸림돌이 될수 있다는 현실인식의
반영이라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태그룹은 지난 45년 서울 남영동에서 해태제과로 출발한 해방둥이 기업.

당시 일본인이 경영하던 영강제과를 이 회사 직원 박병규씨 등 4명이
불하받아 해태제과 합명회사로 설립됐다.

이어 81년 박씨의 장남인 박건배 회장이 회사를 맡아 30대그룹에 끼는
식품대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부라보콘 맛동산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국내 제과.음료업체의 맏형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인켈 나우정밀 등을 인수하는 등 단기부채를 끌어들여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한 결과 그룹해체라는 수모를 당하게 됐다.

해태그룹의 해체는 국내 식품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분간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롯데그룹계열이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국적기업들이 국내 식품업계 진출을 서두르고 있어 해태그룹의
해체는 식품업계의 판도변화를 재촉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 김영규 기자 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