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자 어떤 사람이 고구려 천문도 한장을 바쳤다.

본래 돌에 새긴 고구려천문도가 있었지만 나라가 망한뒤 어느때인가
없어져 버리고 희귀한 인본 한장이 태조에게 전해졌던 것이다.

태조는 이 천문도를 일부 오차만을 교정한뒤 다시 돌에 새기도록해
조선왕조 권위의 표상으로 삼았다.

이것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보물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석각"이다.

모두 1천4백64개의 별이 새겨져 있는 이 천문도는 중국의 "순우천문도"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최고수준의 석각천문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천문관측기술은 이미 삼국시대에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고구려에는 일자라는 천문과 관련된 관직이 있었고 백제에는 일관부라는
관청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선덕왕때 첨성대를 세웠으며 "천문박사" "사천박사" 등의
천문담당 관리가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이들이 기록한 수많은 일식 월식 혜성의 기록이 전해온다.

고대인들은 하늘을 단순히 천문관측의 대상으로만 삼지 않았다.

특히 고구려인들은 별자리를 고분속의 천상세계를 꾸미는 중요한 소재로
삼았다.

평남 대동 덕화리2호분처럼 28수를 다 그린것도 있지만 대개 일부만
그리고 동서남북 각방향의 7개씩의 별자리를 묶어 동청룡 서백호 북현무
남주작이라는 상상속의 네동물로 별자리를 상징했다.

별을 둥글게 그린 것은 지금의 망원경 격인 망통이라는 관측기구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평양 진파리 4호분에서 처럼 별을 밝기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눈 것도
있어 고구려천문관측의 수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지난 3월 일본 나라의 기토라고분에서 발견된 정교한 성수도를 도카이대
정보기술센터와 NHK방송이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평양부근이
관측위치라는 결과가 나왔다.

1천3백여년전 고구려출신이 평양의 밤하늘을 천장벽화로 그렸다는 물증이
드러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유물만 발굴되면 "중국에서 직수입"했다고 둘러대던
일본학자들이 이번에는 또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