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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29일자) 이젠 대화의 광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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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업만은 안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정대로 27~28일 강행된
    민주노총의 시한부 파업은 단위사업장의 호응도가 낮아 파업주도세력이
    노렸던 전략적 성과를 거두는데는 일단 실패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55개 사업장에서 생산차질이 빚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파업참여 조합원이
    당초 예상의 절반도 안되는 3만9천명 정도에 그치고 파업의 강도도 낮아
    우려했던 만큼의 경제적 손실은 없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민주노총의 이번 파업투쟁은 무엇보다도 명분이 뚜렷하지 못했던데다
    불법파업이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성공할수 없었다는 점에서 큰 교훈을
    남겼다.

    우선 상급 노동단체의 파업투쟁노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위사업장의
    적극적인 호응이 필수적인데 이번에 민주노총은 1차 노사정위에서 합의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의 재협상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들을
    명분으로 내세움으로써 사업장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특히 대우중공업이 파업에 불참하는 등 많은 대형사업장들이 상급
    노동단체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 판단을 내린 것은 파업주도세력과는
    동떨어진 근로현장의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지도부도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주는 또한가지 교훈은 여론의 지지없이는 어떠한 파업도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파업은 애당초 적법한 절차와 쟁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불법 파업
    이었기 때문에 국민여론과 사회적 지지를 얻을 수 없었다.

    파업기간중 민주노총 사무실에 파업중단을 촉구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사직당국에는 불법파업주동자들을 엄중하게 다스리라는 요구가 쏟아졌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번 1차 시한부 파업을 통해 민주노총은 강경투쟁만으로는 실리를 얻을
    수 없음을 확실하게 깨달았으리라 믿는다.

    총체적 위기상황에서 어느 특정 이해집단의 이해관철 투쟁이 국민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 우리는 대외신인도가 국가의 사활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밖에 없는 IMF관리사태라는 특수상황에 있다.

    국난 극복노력에 앞장서야할 노동단체가 파업이다, 총력투쟁이다 하여
    가뜩이나 취약한 국가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주어서는 안된다.

    민주노총은 이번 파업투쟁의 결과를 거울삼아 오는 6월10일의 2차 총파업
    투쟁계획을 취소하고 노사정위원회라는 열린 대화의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그것만이 경제를 살리고 민주노총 자신도 사는 길이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권력이 엄존하는데도 이를 우습게 아는
    풍조가 노사분규에서 만큼은 우선적으로 불식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말로만 "엄중대처"를 되뇌일게 아니라 이번 파업사태의 위법부분을
    철저히 가려 약속대로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불법의 묵인은 불법의 자행 못지않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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