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느냐고 물었을 때/그때는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삶이란 것이
아득한/산자락을 돌아오는 석탄 열차의/기적소리처럼 온 몸을/조이는 것인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왜 사는지")

시인 김양수(51)씨가 세번째 시집 "어머니, 당신이 있기에 절망도
희망입니다"(푸른숲)를 펴냈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IMF시대의 절망과 상처를 그린
시집이다.

실직과 방황으로 벼랑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담은 사모곡.

은유나 상징보다 고백체로 털어놓은 "슬픈 가장"의 내면 세계가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삶의 벼랑에 섰다는 뉴스가/이미 뉴스가 아닌 날/
그날들을 돌아와/이슥해진 밤 자락에서/말씀드립니다/어머니 아직은
무사합니다"("정리해고")

지금은 "살아볼만한 세상이 되리라 믿은 그 "믿음"이 죄"가 되는 세상.

아들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간 아버지는 "아직은 이 등판으로/너희들
입막음이 된다고/안심했다가/아직일 따름이라고/고쳐 생각해보면/밀리는
때처럼 떠밀리는 거나/아닌지"("대중탕의 대중들")

현기증을 느낀다.

어떤 날은 실직한 동료와 일자리를 찾아 재래시장을 더듬다가 "2호선
전철에서/5호선으로 다시 7호선으로/옮겨다니면서 전철시렁에/구겨진
신문조각처럼/하루를"팔고 돌아오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

더 이상 가족을 볼 낯이 없을 땐 노숙의 밤을 보내면서 "코끝이 시려 눈
뜨는 새벽/아내 대신/부둥켜 안은 지하도 싸늘한 기둥"앞에서 목이 메인다.

이럴 때 어머니는 "만가지 생각이 화로에/내리는 눈과 같다"는 가르침과
"신화는 절로 오지 않고/만드는 자의 것"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집으로 돌아온 가장에게 "단정한 김치찌개" 옆에 놓인 쪽지 하나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아버지... 힘내세요"

아직 방황은 끝나지 않았지만 "마음의 감옥을 열고 나서면/온 세상에
넘치는 환희를/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몸을 추스리는 사람들.

시인은 이들의 남루한 초상화 옆에 기대앉아 "아름다운 시절"을 기다리며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어머니/감꽃이 필 때가 오면/지난 세월을 거슬려/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그렇게 돌아가겠습니다"("감꽃 필 때면")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