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방향이 변하고 있다.

지난주 북수마트라지역에서 유혈시위가 난 뒤 즉각 1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미국은 군대표단을 인도네시아에 파견키로 했던 계획을 연기했다.

"수하르토의 사임만이 유일한 해결책"(스타인버그 국가안보부보좌관)이라는
얘기도 정부관리들의 입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자카르타 지역에 사는 미국인에 대한 소개령도 내렸다.

수하르토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강경입장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까지 미국정부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입장은 "안정"우선이었다.

이를 위한 미국의 요구는 경제개혁조치였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가시적인 경제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해왔다.

물론 평화적인 시위보장등 반정부 세력의 요구도 일부 수용하라고
재촉하지는 했다.

그러나 무게중심은 수하르토체제의 붕괴가 아니라 경제안정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을 가진 것 같다.

정치개혁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수하르토체제의 종말이 바로 미국이 요구하는 "정치개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주요 단체들은 정치개혁에 대해 논의해야 하며
이것만이 유일한 사태해결 방법"이라는 스타인버그 보좌관의 설명이
이를 대변한다.

미국으로서는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불안을 오래 놔둘 수 없다.

인도네시아 말라카해협은 세계 물자수송의 중요한 통로다.

또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온건한 이슬람국가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사태는 제2의 아시아금융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도 있다.

여기다가 그동안 인도네시아에 4백30억달러의 IMF(국제통화기금)자금을
쏟아부었다.

자칫하면 엄청난 돈을 들이고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미국은 따라서 인도네시아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는 수하르토체제라는
근본 문제에 메스를 댈 것인가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권단체와 언론들도 인도네시아에 대한 차관제공과 원조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