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퇴근길이었다.

집앞 고가도로 밑에서 차가 많이 밀렸다.

상습체증 구간이어서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곳은 신호체계가 복잡해 노련한 교통순경이 아니면 길을 잘 뚫어주지
못한다.

그날따라 의경이 나와있었다.

그는 신호를 조정하기보다는 막무가내로 "신호위반" 딱지를 끊어 댔다.

법대로다.

차는 계속 막혔고 짜증은 더해갔다.

우리의 경제환경도 상습체증 구간처럼 꽉 막혀있다.

현재로선 이를 터주는 건 외자도입뿐이다.

특히 기업에 달러가 많이 들어와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인수.합병(M&A)을 통한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일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새정부 출범 2개월이 지났지만 외자도입은 그리 순조롭지 못한
것 같다.

지난 3월까지 외국인 직접투자신고는 3백8건에 5억7천2백만달러에
불과했다.

건수로는 작년 1.4분기 보다 20%가 늘어난 것이지만 금액으론 오히려
73%가 줄었다.

물론 원인은 많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신청으로 추락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는
여전히 바닥수준이다.

노사분규의 계절이 오면서 외국인들은 한국에 투자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다 정부가 기업개혁을 재촉하면서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그러나 이보단 정부가 교통정리를 제대로 못해 외국인들의 투자를
더디게 하는 건 아닐까.

더 나아가 외국인들을 다른 길로 쫓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경험없는 의경은 원리원칙만 따지며 운전자들과 곧잘 승강이를 벌인다.

결국 교통체증은 가중된다.

운전자들의 자율에 맡김만 못할 때가 많다.

혹시 새정부의 당국자들이 그런 것은 아닌지.

요즘 자주 나오는 정책 우선순위 선정의 표류, 정책조화의 부재 등은 바로
이런 지적들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정책을 내놓고 고집도 꺽지 않는
경제부처가 많은 한 외국인들이 들어올리가 없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징후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외자유치의 안테나인 서울주재 외국인사들의 시각을 보면 그렇다.

그들의 평가는 나아지기는 커녕 악화되고 있다.

특히 새 정부의 실력자들을 많이 만난 사람일 수록 더욱 그렇다.

청와대나 재정경제부, 새정부의 경제자문그룹들을 만나고 떠나는
외국인들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실망만 갖고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투자계약이 성사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걸 보면 그렇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외국기업들은 정작 국내 기업에는 관심을 끊은 것
같다.

국내 자금사정으로 철수하려는 우리 기업들의 외국법인이 M&A의 주요
표적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어댑텍사가 최근 현대전자의 미국내 자회사인 심비오스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 예다.

상습체증구간(한국)으로 차를 몰아갈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이들의
시장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새 정부가 새로운 각오로 이 길을 터줘야 한다.

우리 경제가 자율조정 기능을 상실한 만큼 교통신호(시장기능)가 완전
복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된다.

"수신호"를 이용해서라도 교통체증을 일단 풀어야 한다.

1급 교통순경을 우선 필요한 곳에 배치해야 한다.

외부에서의 고언에 귀를 기울이는데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언제가 되겠지하는 방관적 태도는 진입하려던 자동차도 회차시켜 버린다.

이미 지난 2월 우리는 수십억달러를 한국에 투자하려던 미 다우코닝사를
말레이시아로 돌려보낸 경험이 있지 않은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