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축재처리법안 (상) ]]

부정축재자 처리문제는 막 탄생한 한국경제협의회에 엄청난 시련을
안겨주었다.

부정축재자 처리를 둘러싼 국회와 경제협의회간 공방(61년 2~4월)은
우리나라 경제사에서 분수령적 의의를 갖는다.

부정축재처리법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허정과도정부 때부터였다.

4.19이후 그동안 쌓여왔던 국민들의 불만이 일시에 분출되면서 자유당
정권 아래서 권력과 결탁해 치부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허정 과도정부는 여론에 밀려 부정축재처리법안을 구상했다.

입안은 민주당 정부가 한다.

61년 2월13일 민의원은 부정축재 처리법안을 통과시켜 상원인 참의원에
송부했다.

이 법안은 60년 4월26일부터 소급해 과거 5~8년을 조사기간으로 하고
있었다.

처벌대상자는 1)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자
2)3.15 부정선거에 1천만환 이상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자 3)과거 5년간 연
1천만환 이상의 탈세를 한 자 등이었다.

이외에 과거 5~8년간 경쟁입찰에서 담합했거나 재산을 해외에 도피한 자,
뇌물수수로 연 6백만환 이상의 이득을 취한 공무원 등도 부정축재자의
범위에 넣었다.

경제협의회는 출범한 지 꼭 1개월만에, 닻도 채 올리기 전에 광풍을 만난
셈이다.

경제협의회는 즉각 긴급대책위원회를 소집했다.

법안에 규정한 가벌행위 범위를 추계한 결과 처벌 대상이 무려 5만7천여명
이나 됐다.

협의회원들은 상례)처럼 이뤄졌던 담합까지 처벌한다면 전 상공계에 일대
혼란과 공백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협의회는 "맨투맨"으로 국회의원을 만나기 시작했다.

원로와 중진들도 총동원됐다.

김연수 회장과 박흥식 화신사장 등은 장면 총리 설득에 나섰다.

경제계 중진으로서 4.19후 정계에 투신한 전용순 전대한상의회장 김용주
전주일공사 등은 각각 참의원 구파와 신파의 원내 총무를 맡고 있어
원내에서 힘썼다.

경제협의회는 또 대한상의 무역협회 방직협회 건설협회 등과 연합전선을
폈다.

3월초 반도호텔에서 열린 5단체장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국민감정 등을
고려하여 이 법안을 폐기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억울하지만 대기업인들이 5만여명을 대신해 일벌백계로 매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이를 골자로 하는 성명서를 5단체 명의로 3월4일 중앙일간지에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동 법안은 (중략) 수많은 기업인과 일반 국민들까지 죄수의 테두리 안에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대로 참의원에서 통과되면 사회의 일대 혼란과 불안을 자초해 산업역군인
기업인의 손발을 묶는 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북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한의 경제 번영이라면,
그리고 북괴가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 남한경제의 파탄이라면 (중략) 이
법안은 북괴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법안이 노리는 것은 일종의 사회혁명이요, 김일성 집단의
공산화 음모에 길을 닦아주는 것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성명서는 점점 격해져 울분과 통탄의 감정마저 표출한다.

"남북은 지금 누가 더 잘 사느냐의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필승을 거두려면 무엇보다도 기업인들로 하여금 경제건설을 위한
창의와 노력을 경제윤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바탕을 닦아주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보다 더 명백하고 간결한 자유시장경제선언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구절에 대해 새로운 감동을 갖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각하의 경제위기는 바로 민심위기에 직결되고 있다고 본다.

누란의 위기에 직면한 제2공화국이 기업활동을 저지하고 민족자본을
이산시키고, 외국자본의 도입을 가로막고 (중략) 나아가 분열작용을 조장할
요소가 가득 담겨 있는 이런 법안을 제정하지 않기를 우리 경제계는
충심으로 진언하는 바이다" 협의회는 이를 바탕으로 소위 "부정축재자"
범위를 대폭 축소해 법안을 수정해줄 것을 공식 촉구했다.

그런데 "김일성 운운"한 이 성명서는 국회를 자극했다.

언론도 필화사건으로 크게 다뤘다.

국회는 민의원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경제협의회에 출석을
요구했다.

경제협의회의 이한원 부회장 심상준 간사 김주인 사무국장 등과 방협 건협
대표들이 국회로 갔다.

민의원 조사위원회는 다짜고짜 "당신들은 왜 우리 민의원 의원들을 김일성
괴뢰의 동조자처럼 모독해 명예손상을 시켰는지 그 의도를 말하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시장경제를 지키려다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이다.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