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한파 이전에는 "여기에도 짜가 저기에도 짜가"란 유행가가 사회의 한
단면을 꼬집더니 요즘엔 "여기에도 부도 저기에도 부도"란 유행어가
부도대란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같다.

그 유행어는 명퇴니 정리해고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말들과 함께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출판사의 부도는 글쓰고 사는 사람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들도 이 기회에 구조조정이 되고 거품 또한 빠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영리보다 좋은 책 만들기에 열성을 다했던 출판사의 부도는
안타깝다 못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경제 살리기 때문에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났던 문화의 위기가 이런 것인가
싶어 더욱 그렇다.

경제를 살리는 길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귀가 따갑도록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경제를 살리기는 커녕 대란을 자초하고 말았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퇴직을 당하고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실업가도
늘어났다.

경제는 악재가 되고 정책은 실책이 된 실정이다.

위기가 기회라며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들 하지만, 잘못은 누군가가 하고
죄값은 다른 사람이 받으라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 시점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건 너무 늦은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구제돼야 할 것은 구제하고 조정되야 할 것은 조정해야 한다.

이 참에 거품이 빠지는 건 IMF 덕일 것이다.

문제는 빠질 거품이 제대로 빠질까 하는 것이다.

다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해놓고 허리띠는 서민들만 졸라매게 했고
금붙이로 나라를 살리자 해놓고 금괴를 내놓은 부자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힘없는 정의는 무효이고 정의없는 힘은 압제"란 말이 떠오른다.

"누가 고통을 경멸할 수 있겠느냐"던 카뮈의 희곡 "정의의 사람들"에 나오는
대사도 함께 생각난다.

약자의 고통을 먹이로 먹어치우는 강자들에게 오늘 하루만이라도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라던 어느 시인의 시 한구절을 돌려주고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