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크게 올랐지만 수출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수출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금융시스템이 불안하고 고금리에 따른 기업부도로 산업기반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일부 품목및 지역에 의존한 수출구조도 문제다.

기업들은 환율상승호기를 마케팅강화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수출 현주소를 점검해 수출활로의 방안이 무엇인지 시리즈를 통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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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상사 기획팀장은 요즘 새벽에 출근해 밤늦도록 오직 한가지 생각에 골몰
한다.

손에 쥔 신용장(LC)으로 로컬LC를 개설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로컬LC를 개설하지 못하면 제조업체에서 수출할 제품을 받을 수 없다.

선적일은 다가오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

속이 타들어간다.

영업부서로부터 전화가 잇따른다.

은행의 로컬LC개설이 언제쯤 풀리는지 묻는 전화들이다.

영업담당자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LC를 받고도 수출을 이행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빚어진 수출차질이 지금까지 2억달러를 넘는다.

현재 확보하고 있는 신용장규모만도 1억달러가 넘는다.

물론 적색거래업체여서 겪는 설움이긴 하다.

그렇지만 경직된 금융이 결국 바이어를 내쫓고 있는 셈이다.

금융이 수출발목을 잡는 다른 예로 은행의 DA(인수인도조건) 환어음매입
기피현상을 들수 있다.

은행에서 수출환어음을 할인해 주지 않으면 자금부족으로 수출은 엄두도
못낸다.

환어음매입을 은행이 꺼리는 것은 1백% 위험자산에 포함돼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DA 수출길이 막히면 결국 고객을 빼앗기거나 수출조건이 나빠질수밖에
없다.

올초 (주)대우는 브라질 자브로사로부터 구매오퍼를 받았다.

타이어 6천만달러어치의 연간계약을 맺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결제를 4백20일짜리 DA거래로 하자고 했다.

마진율이 6%를 넘는 퍽 매력적인 거래였다.

곧바로 기계사업본부와 자금부 외환부 담당자회의를 열렸다.

갑론을박이 오갔다.

결론은 "거래불가"였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황승하 외환과장은 "환어음할인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수출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전했다.

나중에 브라질은행의 미국지점에서 할인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지만
수출마진율은 0.4%수준을 뚝 떨어졌다.

자브로사가 수출액의 일부를 맡기고 할인을 중계한 만큼 계약조건이
나빠진건 당연했다.

신원식 무역협회 상무는 "DA 네고가 안풀리면 본지사간 거래를 크게 위축
시켜 앞으로 자동차 건설장비 플랜트 등의 수출이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
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주)대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주요기업이
할인받지 못한 DA 환어음규모가 10억달러를 넘는다.

반면 외상수입은 어려워졌다.

환란이 터지기 전에는 기업들은 원자재의 50%를 3-6개월 외상으로 수입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10-2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기업의 자금부담이 늘어났다.

중소 수출업체는 은행의 외환매매수수료인상 등 부대비용증가로 허리가
휘고 있다.

혁의류수출업체인 금흥양행 김종구 대리는 지난 3월 거래은행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은행이 네고한 달러를 외환통장에 넣으면서 수수료로 0.3%를 뗐다.

김대리는 은행직원에 따져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수수료규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환율불안에 따르는 리스크를 고객에게 떠넘기는 식이다.

LC를 열때 내는 수수료(텀차지)와 공사및 하자이행 등의 보증수수료도 3배
가량씩 올랐다.

그것도 모자라 네고자금일부를 원화로 환전토록하고 있다.

은행이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구의 한 직물업체사장은 "섬유직물 10만달러어치를 수출하려면 1천만원
정도의 부대비용이 들어가는데 이중 70%가 외환부문경비"라고 말했다.

종합상사 관계자는 "환율이 올랐는데도 수출이 늘지 않는 것은 무역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금융시스템만 제대로 뒷받침
된다면 수출은 할만하다"고 강조했다.

< 이익원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