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상영 < 삼성경제연 수석연구원 >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란 용어가 한국에서 자주 등장하게 된 계기는
한보부도와 기아부도 사건이었다.

IMF 구제금융 이후 사회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도덕적 해이를 없애는 것이
경제개혁의 기초로 대두되었다.

최근 대통령에 대한 재경부의 업무보고에서도 도덕적 해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이다.

도덕적 해이란 "정보가 완전하지 않은 거래및 계약에 있어서 각 주체가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가짐 혹은 행동"을 말한다.

정보가 불투명하고 비대칭적이어서 상대방의 향후 행동을 예측할 수
없거나, 본인이 최선을 다한다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인센티브가 별로
없을 때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를 없애는 길은 우선 정보를 투명히 한 후 계약을 정직
하게 이행하는 사람이 이득을 보장받도록 인센티브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약 조건을 명확히 하고 부정직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해이론은 원래 보험시장과 중고차시장에서 나온 개념이다.

화재보험 가입자가 보험을 믿고 화재예방 노력을 소홀히 함으로써 발생하는
보험사의 손해나 중고자동차에 대한 정보가 완전하지 않아 입게 되는
소비자의 손해 등이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도덕적 해이와 유사한 현상으로서 정보비대칭에서 기인하지만 계약이전에
이미 기회주의적 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
부른다.

출산보험의 경우 보험사가 고객의 출산계획 등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함으로써 보험사에 이득이 안될 가입자만 몰려 결국은 계약 자체가 파기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자살자에 대한 생명보험 지급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외국의 경우 가입후 1년정도가 지나면 자살자에게도 보험금을 지불하는데,
가입자가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자살시기를 1년후로 맞춘다면 이는 불법은
아니어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지만 기존 제도를 교묘히
악용한 도덕적 해이 현상에 해당한다.

도덕적 해이는 사회적 비효율로 직결된다.

병원의 의료행위를 들여다 보자.

중증환자를 수술하지 않고 진통제만을 주사하는 의료진의 책임회피 진료로
수술의 적기를 놓친 환자가 얼마후 사망하거나, 의료행위에 관한 정보가
없는 환자를 상대로 과잉 진료를 실시하여 치료비를 높이 책정하는 행위,
그리고 보험가입자가 조금만 아파도 고급진료를 받으려는 행위 등은 병원
의사 조합 환자의 손해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자원낭비와 비효율을 가져온다.

병원이나 가입자가 정직하거나 긴장하지 않아 얻는 개인적 이익보다 조합
이나 사회가 입는 공적 손해가 더 크게 마련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의사에게는 정신적 물질적
인센티브를 주고,의료비를 속이는 병원의 부정직이나 필요이상의 의료행위를
고집하는 가입자는 감시하고 제재할 제도가 보완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를
없앨 수 없을 것이다.

경제위기를 불러온 비효율과 부패및 비생산적 지대추구의 근원에는 도덕적
해이가 있다.

경제재도약과 시스템개혁의 성패도 도덕적 해이의 근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덕적 해이가 초래하는 거품과 비효율은 선진국에서도 경험한바 있다.

1980년대 미국 경기침체기에 5백여개의 주택대부조합(S&Ls)이 도덕적
해이로 인한 부실대출로 부도에 이르렀고, 최근 일본에서도 주택금융전문회사
(주전)의 대규모 불량채권이 일본의 금융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경제위기 국면에서 넓은 의미의 도덕적 해이로 말할 수 있는 현상들이
한국경제시스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지급보증및 지원기금 남발과 각종 세금의 신설및 채권발행 만능주의,
대형 정부사업의 부실과 낭비, 연기금의 투자실패와 대규모 적자 등이
한국경제시스템에 구조화된 도덕적 해이현상의 단면들이다.

정치인들의 세비인상 담합과 개혁 무관심, 금융기관의 고금리 수신경쟁과
퇴직자에 대한 거액 위로금 지급, 부실기업에 대한 무책임한 협조융자 지속,
대기업의 대마불사 신화와 무리한 차입및 기업확장, 기업인들의 고의부도와
경영책임 회피, 신용보증기금의 부실경영과 지대추구도 모럴 해저드에 따른
것이다.

이와함께 관료들의 복지부동과 책임전가및 부패, 장기비전이 결여된
상태에서 단기효과만을 노린 정책담당자들의 정책혼선과 임시처방전 남발,
고수익만을 노리는 예금자들의 행동, 공기업의 부실경영 등이 그 사례들이다.

"왜 민간 은행과 기업이 진 빚을 정부가 보증서야 하고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정부의 보험자 역할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와 부실
대출의 책임은 숨긴채 한국정부의 지급보증만을 요구하는 외국 채권기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 한국 경제시스템의 도덕적 해이와 긴장 ]]

<> 도덕적 해이(비효율)

<>원인 - 정보의 불투명성과 비대칭성
- 왜곡된 인센티브구조의 지속
- 무원칙한 정부의 보험자역할

<>결과 - 부패와 비생산적 지대추구 만연
- 배타적 이기주의와 책임전가
- 경제위기 극복의 지연 및 좌절

<> 도덕적 긴장(효율)

<>원인 - 정보의 대칭성과 투명성
- 인센티브 구조의 개선과 감시 강화
- 정부의 보험자역할 중단

<>결과 - 부패 청산과 비생산적 지대의 고갈
- 신뢰회복과 고통분담
- 경제위기 극복과 시스템개혁 성공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