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중이다.

몇가지 유형으로 모양새도 갖춰 간다.

기업들이 몸부림끝에 만들어낸 자구책들이다.

물론 그 배경은 IMF(국제통화기금) 한파다.

"도전에 대한 응전"이 새 패러다임을 탄생시킨 셈이다.

새 패러다임은 아직 관심권 전면으로 치솟지는 못했다.

구조조정이라는 강력한 화두에 밀린 탓이다.

하지만 찬찬히 흐름을 살펴보면 상당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씨그램 정보통신등 두산그룹 계열사 2곳에선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구축에 여념이 없다.

지난 2월 떨어진 박용오 회장의 지시를 수행하는 중이다.

ERP는 자재구매 생산 판매 회계 등 모든 기업활동을 통합관리하는 시스템.

업무량과 비용을 감안해 회계분야부터 착수했다.

그 결실은 오는 8월에 맺어진다.

그러면 컴퓨터 화면 하나로 자금흐름을 꿸 수 있다.

의사 결정도 신속해진다.

이른바 "리얼타임경영"이다.

IMF체제는 변화 적응능력이 떨어져 초래됐다고 지적돼온 터다.

그 해법으로 "리얼타임경영"이 제시되는 셈이다.

"빠른 것이 생명력"이라는 명제는 그래서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벼랑에서 새끼를 굴려 키우는 야성마저 등장했다.

계열사 우대 풍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계열파괴는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구조조정과 맞물린 시점이어서다.

"그룹계열"이라는 사실은 더이상 바람막이가 아니다.

허약한 계열사가 안주할 공간은 이제 어느 곳에도 없다.

비용이 싸게 먹힌다면 안팎 구별도 없다.

대우자동차는 부평공장 레간자라인 일부를 하청업체에 맡겼다.

대단한 파격이다.

생산노하우 유출가능성에 비춰 그렇다는 얘기다.

충남방적은 최근 전산실을 IBM에 맡겼다.

전산자료엔 회사기밀이 모두 담겨있다.

그런데도 아웃소싱이다.

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다.

비장감마저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협력업체 관계가 바뀌는건 당연한 노릇이다.

시장경제 메커니즘만이 쌩쌩 작동할 뿐이다.

과거 원청.하청업체간 훌륭한 덕목이었던 일체감은 이제 없어졌다.

효율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대우전자는 이달중 협력업체망을 다시 구축한다.

경쟁입찰을 통해서다.

그동안 어떤 관계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싼값에 납품하는 업체와 손을 잡을 뿐이다.

삼성정밀화학은 요즘 해외 벤처연구소를 자주 찾는다.

연구개발(R&D) 투자비가 대폭 삭감된 터라 남이 개발한 제품이라도 확보
하자는 생각에서다.

그 편이 훨씬 더 싸게 먹힌다.

신제품을 얼마나 확보할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해외출장이 잦고 발걸음은 빨라진다.

R&D 전략에도 새조류가 생겨난 셈이다.

"적과의 동침"은 상식으로 통한다.

IMF체제는 기업들의 독자노선을 제약하고 있다.

자금난을 감안하면 리스크 부담을 혼자 떠안기 힘들다.

경쟁이 치열하기로 소문난 PCS(개인휴대통신)사업.

한국통신프리텔과 한솔PCS가 손을 잡았다.

지역을 나눠 기지국을 설치해 같이 쓰기로 했다.

앞으로 8천4백억원의 시설투자비가 절약된다는 설명이다.

전략적 제휴가 빈번해지고 있는 배경이다.

기업들은 "백지장 맞드는 지혜"를 어느정도 터득했다는 눈치다.

영토확장보다 수성을 중시하는 경영도 등장했다.

IMF체제는 소비자들에게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한다.

새고객 찾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기존고객에게 새상품을 파는게 쉬울 수 있다.

LG전자는 데이터베이스화된 고객정보를 이용한다.

제품수명이 끝날때쯤 된 고객들에게 집중판촉전을 편다.

기존 고객에게 충실함으로써 매출을 늘리겠다는 포석이다.

로열티 마케팅은 여기서 출발한다.

< 박기호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