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외국건설회사의 간부로부터 우리의 건설시장은 왜이리 폐쇄적이냐는
힐책성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동남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시장만 이처럼 꽉 막혀있다고 그는 힐난했다.

우리나라는 건설대국이다.

작년도의 건설부문 투자는 1백조원으로 GDP의 20.6%나 되었다.

해외시장으로의 진출도 눈부시다.

작년도의 해외 건설수주는 1백40억달러.

그런데 갑작스런 IMF로 건설산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건설부문의 타격이 크다.

미국의 대공황때도 건설부문은 무려 80% 이상이 위축되었다 한다.

요즘 비슷한 위기상황을 맞아 매일 10여개의 우리 건설회사들이 넘어지고
있다.

그래서 건설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건설은 무엇보다 고용효과가 크다.

가령 공공사업에 1조원을 투자하면 3만5천명의 일자리가 발생한다.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건설산업이, 소위 한국판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논리도 있다.

IMF사태의 원인은 외화부족에 있으므로 수출산업이나 기업구조조정에
자금이 우선 배정되는게 도리일 터이다.

또 재정긴축이 추진되면 인프라부문의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인프라부문의 투자위축은 곧 물류경쟁력 약화를 뜻한다.

인프라건설은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다.

그동안 정부재정이 부족해 일부는 민자유치에 의존해왔다.

이제 인프라에도 외자를 끌어들이자.

민자유치를 외치면서도 우리는 외자에 빗장을 걸고 있었다.

외국기업들이나 국제펀드, 은행들이 우리나라의 인프라사업에 참여하고자
문 앞을 서성거렸지만 우리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우리의 외국인 직접투자수준은 다른 경쟁국에 비해 너무 저조하다.

96년도 총 고정자본투자에서 외국인의 직접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
보면 말레이시아가 13.2%, 인도네시아가 8.5%, 필리핀이 7.3%, 태국이 3.2%,
그런데 우리는 1.3%밖에 안된다.

외국인 직접투자의 비중을 GDP와 비교해 보면 영국 28.5%, 말레이시아
52.1%, 중국 18.2%이나 우리는 고작 2.3%이다.

외국인 투자분야 중에서도 건설분야는 황무지였다.

외국인 직접투자의 1.1%에 지나지 않는다.

빗장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가?

그동안 우리의 닫힌 의식 탓이었다.

현재 동아시아지역에는 벡텔 구마가이구미 부이부에 지멘스 솔다티 등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기회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

물론 우리 기업들도 돋보이지는 않지만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투자대상은 전력 가스 교통 수자원 등 주요 SOC사업이다.

여기에는 AIG아시아 인프라기금, 에어리어 브라운 보베리 기금 등
범국가적 SOC기금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 개통된 홍콩의 이스턴 하버 크로싱, 호주의 시드니 하버 터널,
태국의 방콕 제2고속도로, 콸라룸푸르의 경전철사업 등은 모두 다국적기업
들이 국제적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한 사업들이다.

지금 대만의 고속철도사업은 국내외기업간의 합작 컨소시엄에 의해 추진
되고 있다.

건설부문에서 가장 외자유치가 활발한 필리핀의 경우 현재 추진중인
24건의 민자사업중 18개 사업이 외국인이 직접투자나 합작형태로 참여하여
약 30억달러의 외화를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각국이 SOC의 청사진을 펼쳐 놓고 외자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상이다.

지난해 봄 내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 전국에
신도시 고속도로 공업단지 등 많은 국토개발사업의 그림을 그려놓고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베트남 관리들은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우리의 관리들은 어땠는가?

우리는 최근 부동산시장을 개방했다.

외국기업을 위한 투자자유지역의 구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내국인에게도 제한했던 토지개발시장이 곧 개방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직 우리의 많은 민자유치사업의 추진절차나 수익성이 불투명하다.

국제시장에 내놓으려면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SOC의 경우는 현재 BTO(build-transfer-operate)방식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외국기업들이 선호하는 BOT방식도 허용해야 하며 외자도입의 한도
규제(1조원 이상 사업은 20%로 제한하고 있음)도 완화해야 한다.

국토와 인프라개발에도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