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일 금융감독위원장실.

신복영 서울은행장과 신억현 서울은행전무가 이헌재 금감위원장을 만났다.

면담 목적은 "인사차".

그 이틀뒤인 4일 서울 외환 신한 상업 경남 등 5개 은행은 동아건설에 대해
1천4백억원의 2차협조융자를 하기로 결의했다.

해태그룹은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에 대해 끊임없이 협조융자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 미집행분 5백47억원을 융자해 주고 1천억원을 추가해 달라는게
해태의 요청이다.

해태는 "왜 다른 은행은 다 해주는데 조흥은행만 그러느냐"고 "협박반
읍소반"으로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조흥은행은 "차라리 위에서 사인이 오면 좋을걸"이라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가지 사례는 은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의식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은행 뜻에 관계없는 협조융자가 은행들에 끼친 폐해는 그동안 누누히
지적돼 왔다.

대형은행들이 집단적으로 부실화에 빠져든 근인도 다름아닌 "눈치보기식
대출"이요, "관치금융"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은행경영진들은 아직까지 "위쳐다보기"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주들어 외환은행과 조흥은행은 각각 9천5백억원과 2천억원의 중소기업
특별대출을 취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신이 잘못돼더라도 해당 직원을 면책하겠다는 사항도 못박았다.

중소기업이 한계상황에 부닥친 점을 감안하면 두손들어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금융계의 시각은 곱지 않다.

"중소기업대출을 늘리고 해당 직원을 면책하라"는 금감위의 지시에 따른
약삭빠르고 점수따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은행실무자들은 경영진의 "자리지키기식" 사고방식을 금융빅뱅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고 있다.

물론 은행경영진들도 입만 열면 은행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기은행 이야기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살아 남는다" "그래서 지금 증자를 하려는 것 아니냐"
"이달중 외자유치의 가시적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빅뱅이 필요하지만 자기은행은 예외여야 한다는 투다.

발전적 의미에서 자기은행이 빅뱅의 대상이 되겠다는 은행장은 어디에도
없다.

최근 부실은행장을 문책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곳곳에서 내비치고 있다.

물론 이런 발상은 상당한 비약이다.

주총에서 선임된 은행장을 임기전 정부가 임의로 바꾸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부실은행장 문책에 대한 여론의 호응도는 높다.

은행경영진은 "자리지키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은행발전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따져 봐야 할 때다.

< 하영춘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