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새뮤얼슨 교수는 한국이 현재의 외환위기를 충분히 극복하고 21세기
초에는 다시 활기찬 성장의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일본의 후진적인 경제구조를 답습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있었던 만큼 관료주의, 재벌의 지나친 확장욕, 관치금융 등 다양한
과제들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폴 새뮤얼슨 교수는 한국이 과거 30여년에 걸쳐 보여주었던 역동성과
근면절약하는 정신이 한국을 다시 일어서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가 한국경제신문 독자들에게 보내온 특별기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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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사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고전적인 비극을 닮았다.

역경과 고난이 따르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드라마가 있다.

한국 근대 경제사는 일본 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식민지에서 시작됐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배해 항복하면서 한국인들은 자유와 새로운 삶에
대한 비전을 되찾았다.

한국은 때가 늦었기는 했지만 줄곧 일본의 성장모델을 따라 잡으면서
성장해왔다.

그 결과 60년대 이후 30여년간 드라마틱하다고 할 정도의 고도성장을
구가해왔다.

아시아의 빈국으로 출발한 한국은 이 짧은 기간동안 선진국 수준으로까지
진입했다.

내부로부터 잉태되어왔던 독재정치도 민주적 사회질서로 전환되었고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향유하게 되었다.

얼핏보면 이같은 과정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예를들어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등 남미국가들에서는 한국과 같은 경제성장
모델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은 그야말로 납득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의 원리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발전은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미래 지향적이다.

한국 건설인들은 중동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부분의 사회
인프라를 건설했다.

근로자들은 현지에서 검소하게 살고 고된 노역의 대가로 받은 임금의
대부분을 모국에 송금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뉴욕에서 리무진을 탔을때 그차의 운전자는 이민온 한국인이었다.

그는 부지런히 저축해 바로 자신이 몰고있는 리무진을 샀다.

필자의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는 저가의 한국산이다.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열심히 만들어 많이 수출하는 전략을 썼고 그것이
주효했다.

또 하나 한국인들은 고학력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한국인들은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들은 대부분 서양의 최신기술을 담은 책을 파고 들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한다면 한국이 매년 10%에 가까운 높은 성장률을 이룩한
것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같은 기간동안 미국이나 프랑스는 3%대의 성장률에 그쳤다.

그러나 고속성장의 수면아래에서는 많은 문제점들도 하나둘씩 자라왔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천민 자본주의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지만 사실은
일본의 악습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들에 다름아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것중 대표적인 것이 "재벌(Chaebols)"이라고
불리는 소수의 경제그룹이다.

재벌은 소수의 가족집단이 문어발을 뻗어 전산업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업종을 소유하고 있는 형태다.

이들은 일본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은행으로부터 과다하게 돈을 빌려 경제성이 의심되는 사업에 비합리적인
투자를 계속해왔다.

은행들은 또 관료주의적인 정부로부터 은밀한 지시를 받았다.

결국 상당한 사업들에서 사업자체는 잘못 돌아갔지만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돼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이같은 문제들은 한국증시에서 주가가 계속 오르고 외국은행들이
단기자금을 기꺼이 연장해주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런 표면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재벌들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과 망상이 가져다 주는 행복에 불과했다.

불행히도 지난해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태국에서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그 여파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로 퍼져나갔다.

한국이 다음 차례였다.

이때까지 아무일 없었던 외국의 투자자들은 한국에 대해 무정하리만큼
엄격한 기준으로 재심사했다.

결국 한국인이 만들어낸 "그리스적 드라마"는 단숨에 비극으로 치달았다.

IMF 구제금융 지원이 불가피하게 됐고 한국은 그 대가로 IMF의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여야 했다.

성장가도만을 달려왔던 한국으로서는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인도네시아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대처방안은 달랐다.

한국은 IMF의 요구사항들을 순순히 받아들인 반면 독재자 수하르토는
아시아 금융시장에 요구되고 있는 새로운 규칙들을 거부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직계가족들이 정치부패와 권력을 악용해 쌓아온 수백억달러의 재산을
보호하려 하고 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의 수천만 인구는 장기침체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이나 태국의 통화가 눈에 띄게 안정을 되찾는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지난해 외환위기가 닥친 이후 앞으로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재빠르게 배우고 있다.

경제성장률을 낮추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대학생이나 노조의 지도자들도 길거리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것이 설사
다소간의 명분이 있더라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고통스런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절제하는 생활과 부지런함, 또 수출확대를
위한 노력만이 한국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이다.

굳이 인도네시아뿐아니라 한국은 일본에서도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일본 역시 비슷한 경제구조가 누적되어온 끝에 상당한 곤란을 겪고있다.

일본은 그러나 이 위기에 아주 수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일본은 아직 문제해결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고 있지 않다.

한국은 금융기관들이나 대기업의 모회사라고 하더라도 경쟁력이 있는
회사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조속히 정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또 작금의 위기를 초래한 관료주의적인 관행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깨닫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인들에겐 희망적인 조짐이 많다.

외국 은행들은 한국의 단기외채를 속속 연장해주고 있다.

한국이 발행한 외평채는 외국 투자자들에 상당한 호감을 샀다.

이로써 한국은 위기가 발생한지 불과 수개월만에 국제금융사회로 다시
복귀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처럼 한국인들은 역경에 부딪쳤을때마다 매번 이를 딛고 일어났다.

필자는 한국인들이 IMF라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밝은 빛을 다시
만끽할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 분명 한국은 다시 건강하고 탄력있는 경제를 보여줄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 정리=박수진 기자 >

[ 약력 ]

<>1915.5.15 미 인디애나주 출생
<>1935 시카고 대졸
<>1940 MIT대교수
<>1941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1947 미 경제학회 제1회 "클라크상"수상
<>1951 미 계량경제학회장
<>1970 노벨경제학상 수상
<>현 MIT대 교수

< 저서 >

"경제학" "경제분석의 기초" "선형계획과 경제분석" "경제학 독본" 등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