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감옥을 "이승에서의 지옥"이라고 했다.

그리고 형틀로 고문당하는 것, 옥리로부터 토색질을 당하는 것, 춥고
배고픈 것, 병들어 앓는 것, 오래 갇혀있어야 하는 것을 옥중의 다섯가지
고통으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오래 갇혀 있는 고통이 제일 크다고 했다.

실제로 오랫동안 옥살이를 해본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당시에는 범죄자가 잡히면 일단 옥에 가두었다.

판결만 나면 곧바로 형을 집행했기 때문에 감옥은 지금의 교도소와는 달리
미결수들이 갇혀있는 곳이었다.

감옥이 죄인을 교화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근대이후의 일이다.

조선조 역대 왕들중 세종은 누구보다 죄인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섰던
임금이다.

"세종실록"에는 "감옥에 갇혀 있는 죄인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한해를
보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본인들의 일신상의 고통도 크겠지만 부모 처자들에게까지 고통을 준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또 "죄를 사해주는 것은 허물을 씻어내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여는
것이니 오늘 죄를 짓고 내일 사해 주어도 무방하다"는 말은 죄인도 백성의
하나라는 그의 교화.애민사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의 우리나라 감옥은 과거와는 달리 제도와 재소자 처우가 개선됐다.

그러나 감옥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감옥은 독특한 규율, 복장, 풍습과 관습, 특이한 사람들이 갇혀있는
곳이다.

감방속은 언제나 밤이고 그 속에서 새벽을 기다리는 것처럼 매일 눈물속에
풀려날 그 날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재소자들이다.

"땅에다 금을 그어놓고 이곳이 감옥이라해도 들어가려들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감옥은 스스로 찾아갈 데는 못된다.

정부가 재소자의 권익(외부교통권)을 위해 모범재소자들이 가족들에게
전화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1년에 네차례씩 함께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소식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차타(chatah)"라는 히브리말은 "죄"라는 뜻으로
번역되지만 사실은 "길을 잃은"것을 뜻하는 말이다.

재소자들과 가족과의 통화가 참 교화의 일익을 담당하는 길이 되기를
기대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