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에 지은 집을 생각해 보자.

재래식 부엌에 재래식 화장실, 그리고 연탄아궁이에 거실이 없는 집이다.

21세기를 맞으면서 이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경제가 그러한 상황이다.

기업가정신 재벌구조 소비행태 정부역할 노사관계 등 모든 것이 30년전
공업화초기시대의 틀 그대로다.

이때문에 산업경쟁력은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당면했다.

땅값도 금리도 그리고 이제는 노임도 비싼 나라가 됐으니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거기다 기술까지도 선진국에 당할수 없으니 경제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의 IMF사태에 이르게 된 것 아닌가.

지금 우리는 심각한 실업과 인플레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국면은 3년정도 지나면 그런대로 봉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경제가 경제활력을 되찾고 일류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은 저성장 고비용 고물가 저생활의 2류국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자면 전면개혁을 통해서 국가를 개조하는 길밖에 없다.

이것은 30년전에 지은 그 집을 부분수리만 해서 21세기를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개혁에는 정부 기업 노조 정치인 소비자가 모두 참여해야 한다.

과연 이들 모두가 기꺼히 참여해줄 것인가.

그리고 전면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개혁에는 수많은 걸림돌이 있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이러한 걸림돌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면한 개혁에 큰 걸림돌은 두가지로 집약된다.

그 하나는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이며 다른 하나는 기득권계층의 저항이다.

이 두가지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개혁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한국의 정치상황은 한마디로 반개혁적이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려는 개혁이 국민합의에 의한 민주적절차에 따른
개혁인 만큼 여야를 초월한 정치권의 개혁동참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아직도 여야 할 것없이 국익보다도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패거리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속에서 여소야대
현상까지 겹쳐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하는 것을 우리는 6공화국시절에 경험한바 있다.

선진국에서는 여소야대의 정치구도속에서도 원활한 국정개혁이 가능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들이 당파를 초월해 비밀자유투표할 수 있는
"크로스 보팅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하루속히 이 제도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며 이것이 안된다면
정계개편의 당위성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기득권계층의 저항이다.

기득권계층은 개혁의 피해자이고 소외계층은 수혜자다.

그러나 피해자의 피해의식과 저항은 수혜자의 수혜의식과 개혁옹호보다
으레 더 강력하고 적극적인 것이다.

기득권계층은 광범위하다.

재벌 정치인 정부 노조 소비자들이 모두 포함된다.

개혁에 대한 이 특권계층의 저항을 극복하자면 사회 대응세력간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위기의식과 안정의식간의 적절한 균형유지가 필수적이다.

첫째 불황과 실업 그리고 인플레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주고
있지만 동시에 경제의 병을 고쳐주는 치료약이다.

따라서 그 수위와 기반을 적절히 유지시켜야 한다.

둘째 우리사회에는 많은 대응세력들이 있다.

예컨대 기득권과 소외권, 재벌과 노동조합, IMF 등 외부세력과 국내세력
등.

이들 세력들의 견제와 균형을 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확고한 개혁의지이며 광범위하고 강력한
개혁주체세력을 응집시키는 일이다.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현재의 국가적 위기상황은 민주질서속에서 명예
혁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한국은 일류선진국
으로 새출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