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와 자민당이 지난 26일 사상 최대인 16조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한데 이어 27일에는 6조엔 규모의 추가감세를 시행키로 했다는 소식은
얼핏 회의적으로 들리기 쉽다.

이미 지난해 12월에도 2조엔 규모의 특별감세 및 30조엔의 금융안정기금
투입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경기대책을 발표한바 있고 그전에도 여러차례
경기대책을 내놓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효과는 커녕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경기침체로 인한 연쇄도산과 구조조정으로 지난 2월 현재 완전실업자수가
2백46만명에 달했으며 완전실업률이 3.6%로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연속
3.5% 이상을 기록하는 심각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번 경기대책의 특징은 재정구조개혁법을 개정하기로 했다는 점이 꼽힌다.

만일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정방향대로 재정적자 규모를 오는 2003년까지
국민총생산(GNP)의 3%이하로 줄이기로 한 것을 2005년까지로 늦추고 경제
사정이 나쁘면 법집행을 일시정지해 추가감세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적자국채 발행 등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정책전환은 즉각적인 경기부양효과를 기대하는 국내외 여론압력에
굴복한 인상이 짙다.

미국과 유럽은 일본 내수경기가 회복돼야 만성적인 미.일 무역역조의
개선은 물론 동남아 통화위기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획기적인
경기부양조치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이런 요구에는 동남아 통화위기로 인한 부실채권까지 떠안게된 일본경제가
무너지면 세계경제를 대공황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하지만 단순히 소비세부과에 따른 소비위축뿐만 아니라 금융부실로 인한
신용경색이 심각하고 일본사회의 노령화로 인해 장기적으로 재정파탄 위험이
있는데다 기대성장률 하락으로 인한 설비투자 부진 등 그동안 일본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배경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이번 감세
조치로 내수경기가 회복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본다.

게다가 이번 조치로 재정개혁과 행정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하시모토정권의 무능이 다시 한번 입증돼 정정불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주목된다.

누구나 과감한 구조개혁의 시급함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수행할 정치력이
부족한데다 최근 대장성 독직사건으로 악화된 신뢰위기까지 겹친 일본의
딱한 사정은 IMF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세계 2위 규모인 일본경제의 경기부양 및 체질개선은 일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통화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진 동아시아경제의 조속한 회복, 나아가
세계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라는 점에서 이번
경기부양책의 귀추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