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이타닉"은 서울에서만 87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지금추세로라면 전국에서 3백만명이상을 동원할 전망이다.

관람료수입만 1백60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세계 전체를 놓고보면 그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올라간다.

2억8천만달러를 투자한 영화, 또 이를 쏟아부을 수 있는 자본의 힘이 위대
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타이타닉의 위대함은 투자된 돈의 규모에 있지 않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스케일에서 위대함을 찾을수있는 것도 아니다.

잘 알려진 줄거리를 극적으로 영화화해 전세계에 수출하는 문화적 토양,
문화를 산업화하는 능력을 보여줬다는데에 진정한 위대함이 있다.

우리가 문화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수 있다.

문화산업은 "21세기 최고의 고부가가치산업"(구사카 기민토)이자 "국가
경쟁의 최후 승부처"(피터 드러커)이다.

굳이 21세기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문화산업은 마찰없는 무역상품이다.

멀티미디어시대의 도래와 함께 수많은 콘텐츠(Contents)를 가공하는 굴뚝
없는 공장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아이디어 하나로 수백만 수천만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미래형 산업이다.

한국과 같이 인재들이 많은 나라에 딱 맞는 산업인 셈이다.

경제대통령임을 자부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관광산업 영상산업 문화특산품은
모두 부의 보고"(취임연설문)라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뿐만 아니다.

제품의 수명도 반영구적이다.

40년전에 만든 영화 "벤허"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상영되며 감동을 준다.

한 작품이 성공하면 다른 분야에까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것도
이 산업의 특징이다.

소설 "삼국지"가 영화로 만들어지는가 하면 만화 "아기공룡 둘리"가 캐릭터
로 제작된다.

한마디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다.

문화산업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만화영화 "라이온 킹" 하나로 8억4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우리자동차업체들이 1백50만대의 자동차를 팔아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일본의 닌텐도와 세가는 게임사업으로만 96년 한햇동안 6천5백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반도체가 최대의 호황이었던 당시의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매출액과
맞먹는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산업"으로의 문화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런 실정이다.

우선 시장규모를 보자.지난해 기준으로 영화산업은 2천억원을 조금 넘었다.

음반은 4천억원, 게임기는 5천억원에 불과했다.

출판(2조4천억원)과 비디오(1조원)를 합해도 4조7천억원 정도다.

산업내용은 더욱 취약하다.

영화의 80%, 비디오의 93%, 만화영화의 80%, 게임소프트의 90%가 외국물
이다.

이같이 낙후된 우리의 현실은 IMF 관리체제에서 경제회생의 길을 문화산업
에서 찾아야 한다는 명제를 탄생시킨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21세기는 문화전쟁의 시기"라고 규정했다.

이는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는 뜻이다.

문화산업의 토양인 상상력과 개성, 아이디어야말로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소프트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인텔사는 연구원으로 편집광(paranoid)을,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상상력
풍부한 사람을, 닌텐도는 창조력있는 사람을 각각 뽑는다고 한다.

그사람의 학력과 기술은 물론 성실함조차도 무시될수 있다는 얘기다.

발전의 토양이 있는 곳에서만 문화산업은 만개할 수 있다.

문화에 투자하지 않고 문화를 생산하지 않는 한 우리문화를 지켜 내는
일조차 힘들어진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는 역설은 문화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산업으로서의 문화는 수많은 벤처기업을 탄생시킨다.

이는 곧 사회문제화된 실업을 흡수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문화산업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극복할수있는 키워드이기도 한
것이다.

문화산업 육성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처한 경제위기 극복을 앞당기자는
논리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의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한국은 이제까지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해 왔다. 미국 독일같은 선진국은
가격보다 이미지로 상품을 판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한국경제신문이 "문화산업 육성"의 기치를 높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오춘호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