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단일경제권으로 묶는 기본 틀이 될 유럽경제통화동맹(EMU)
참가국이 사실상 확정됨으로써 유럽대륙의 "다국가-단일통화"실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5일 15개 회원국 중 11개국을 내년 1월
출범하는 EMU 1차 참여국가로 결정했다.

그동안 통합기준을 놓고 특히 통합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가 마찰을
빚으면서 통합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비관론까지 대두됐던 것을 생각하면
초기 참여국이 11개국이나 된다는 것은 유럽의 저력을 보여준 기대이상의
성과라고 할수 있다.

이처럼 유러(Euro)화 동맹이 생각보다 순조롭게 결말을 본 데는 아시아의
외환-금융위기에서 얻은 교훈이 적지않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 달러화가 빠져나가면 견뎌낼 장사가 없다는 것, 유럽의 경제적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빈 곳을 채워줄 제2의 국제결제통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오는 5월2일의 유럽정상회의 의결을 거치면 민족 종교 언어 등이
서로 다른 11개 나라들이 사상 처음으로 내년 1월1일부터 똑같은 화폐를
쓴다는, 믿기 힘든 일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MU옹호론자들은 진행이 순조로울 경우 유러화가 동맹국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는 2002년에는 세계기축통화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MU 11개국의 경제규모만 해도 2억9천만명의 인구에 전세계 국내총생산
(GDP)의 19.4%, 세계무역의 18.6%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에 영국 등
나머지 4개국까지 참여할 경우 세계경제의 또다른 강자인 미국을 앞서는
공룡경제권이 형성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의 완전한 경제적 통합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현재 동맹국의 경제사정은 유러체제를 안정시키기에는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중 전후 최악의 실업문제는 유러체제를 위협하는 최대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유러시대의 개막은 20세기를 지배해온 미 달러화의 1극체제에서 벗어나
제2의 국제결제통화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만하다.

특히 외환-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에는 이같은
혁명적 상황이 몰고올 변화와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으로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후 첫 해외나들이를 오는 4월2일
런던에서 개막되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로 잡은 것에서도 읽을수
있듯이 유럽과의 경제관계 증진이 새정부 경제외교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유러시대로의 진입을 더욱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할
입장이다.

유럽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정부와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유러화 등장에 대비한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우리도 예상할 수 있는 변화에 대비해 유러화관련 금융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전문요원을 양성하는 등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