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로 출범한지 한달이 지난 김대중대통령의 새정부는 경제구조조정
과 관련해 그동안 적지않은 시책들을 쏟아 내놓았다.

그중에서도 은행과 기업의 재무구조개선 약정체결, 대기업 계열사간의
상호지급보증 해소, 부채비율 조기축소 등 대기업 관련시책이 특히 많았다.

이는 당면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경제
개혁을 추진하려는 새정부의 왕성한 의욕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기업관련 시책들을 뜯어보면 문제가 적지 않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우선 지금까지 발표된 대기업정책들이 관계당국의 충분한 조율을 거쳐
확정된 방침인지 의심스럽다.

주력기업 3-4개만 남기고 나머지 계열사들은 모두 정리하라며 이른바
"빅딜"을 강조했다가 파문이 커지자 시장자율에 맡긴다고 후퇴한 것이나,
구조조정을 서두르라고 하면서 노동법까지 개정했지만 정작 30%이상의
정리해고는 안된다는 노동부장관의 압력이 그렇다.

또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체결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체결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무시한채 예정보다 3년이나 앞당겨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낮추라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될 때마다 정부의 대기업정책이 논리와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되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 고통
스러운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혼란과 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아직도 기업의 손발을 묶는 비합리적인 규제가 많아 원활한 구조조정
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외국기업에 비해 불이익을 강요당하는 역차별이
심각하다는 대기업들의 하소연도 일리있는 얘기다.

예를 들어 현재 외국인의 은행지분 소유한도는 사실상 제한이 없는데 비해
국내 대기업들은 여전히 4% 상한선에 묶여 있다.

물론 지나친 차입경영은 고쳐져야 하며 대외신뢰도 회복을 위해서는 재무
구조개선이 빠를수록 좋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무구조개선 약정체결을 정부가 강요하거나 부채비율이
2백% 넘는 기업에는 대출을 회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금융자율 취지에 맞지
않는다.

거래기업의 부채비율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 또는 어느 기업
부터 정리하느냐는 문제는 상업금융기관인 은행이 대출심사를 통해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지시할 일은 아니다.

말로는 금융자율을 강조하면서도 세세한 사항까지 행정지도로 은행을
옭아매왔기 때문에 오늘날 부실금융기관이 양산됐다고 볼수도 있다.

그리고 부동산경기 침체로 보유자산 매각마저 어려운 현실을 무시한채
구조조정을 채근하며 여론몰이식으로 밀어붙이는 것도도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본다.

IMF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우리경제를 이끌어온 정부 은행 대기업간의
역학관계와 역할분담을 산업정책차원에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경제에서 대기업의 위치와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결정돼야
대기업정책에서 불필요한 혼선과 오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