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로즈 시티은행 부회장은 한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고금리를 해결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기외채 만기연장으로 큰 고비는 넘겼으나 환율과 금리가 더 안정돼야
한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서울에서 오는 31일 열리는 외채만기연장 서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곧
방한할 로즈 부회장을 뉴욕 맨해튼파크애비뉴 집무실에서 만났다.

-외채협상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대상 채무중 만기 연장된 금액이 97%에 이른다.

이는 과거 중남미 외환위기 등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국제 사회가 한국을 그만큼 신뢰하고 있음을 반증해 준다.

특히 세가지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첫째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에 충실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국제 채권단과 한국 정부 사이에 자발적으로 협상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향후 외채 문제 해결의 한 모델을 제시했다.

셋째 협상 과정에서 시간 낭비없이 신속한 타결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막후 협상에서 김용환 의원, 유종근 대통령 경제고문, 정인용
국제금융대사의 풍부한 국제 금융계 경험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한다.

뉴욕 로드쇼에 홍세표 외환은행장이 참석, 채권자들의 질의에 응한 것 역시
적절했다.

홍 행장은 베테랑 은행가의 면모를 보여줬다"

-한국정부는 외채협상의 여세를 몰아 30억달러 규모의 외환평형채권을
국제 금융시장에서 발행키로 했다.

내주중 뉴욕 등에서 설명회(로드쇼)를 가질 예정인데.

"성공할 것으로 낙관한다.

한국은 외채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됨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에 복귀할수
있는 발판을 이미 마련했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전체에 전환점을 안겨
줬다"

-일부 국제 금융 전문가들은 한국이 외채협상 타결이후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데.

"한국이 해야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는게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시장 개방등 개혁 프로그램의 내용은
고무적이지만 쉽게 성취될 수는 없는 것들이다.

특히 고금리문제는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기업들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다행히 최근 원화 환율이 안정되고 있으며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외채 협상의 최대 성과는 한국이 국제 금융계의
신뢰를 회복하게 됐다는 점이다.

뭐니뭐니 해도 위기 해소의 관건은 신뢰회복이다"

-한국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국제 금융계로부터의 신규 자금 유입이
시급한데.

"한국이 외환 보유고를 확충하고 수출을 늘려 나간다면 국제 금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신규 자금을 공급할 것이다.

이미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시티은행을 비롯한 미국 대형 은행들이 무역 금융을 중심으로 대출 라인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시티은행은 무역금융 이외에도 신규 자금을 공급할수 있는 다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티은행이 주도하는 신디케이티드 론 공급계획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그런 계획을 추진한 적이 없다.

일본계 은행 등에 단기채권 만기 연장의 한 방안으로 기존 대출금을 증서
(loan certificate) 형식으로 증권화하자고 제의한 것이 와전된 모양이다.

잘못된 루머가 확대 재생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제일은행을 인수하는 계획은.

"그 역시 검토하지 않고 있다.

현 시점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장래 유망 시장인 한국에서 시티은행의
자체적인 영업 규모를 늘려 나가는 일이다"

-한국 기업들의 외채문제가 금융권 못지 않게 심각한 상태다.

만기 재연장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기업은 은행과 다르다.

구조조정 결과에 따라 개별적인 금융지원여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금리가 낮아지고 원화가치가 회복된다면 기업들의 전반적인 자금
사정도 개선될 것이다.

기업구조조정등 한국정부의 경제정책이 신뢰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이 외환위기의 터널에서 언제쯤 완전히 벗어날 것 같은가.

"하루 이틀 사이에 가능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이 국제 금융계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했으며
수출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유종근 고문이 내게 "한국은 과거 6.25동란의 잿더미속에서도 불사조처럼
일어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외환위기로부터는 더 빨리, 그리고 종전보다 더 강력한 체질로 경쟁력
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한가지 권고한다면 진정한 체질 강화를 위해서는 해외로부터 단순 금융
자금을 끌어들이기 보다는 직접 투자를 유치하는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로즈 부회장은 "오늘(24일)은 작년 12월24일 미국 재무부의 요청으로 한국
단기외채 해결 작업을 떠맡은지 꼭 석달째가 되는 날"이라며 "당시 한국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한국 사태를 몹시 비관적으로 봤었는데 이젠 상황이
아주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본계 은행들을 비롯 유럽과 미국계 은행관계자들
에게 두루 전화를 걸어 "한국이 무너지면 채권은행들도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하며 만기 연장을 설득했었다"고 밝히고 "한국 외환위기의 최대
고비는 크리스마스때부터 설날까지의 1주일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로즈 부회장은 "위기 해결을 위해 채권은행들이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는 등 일각에서 지적했던 서방 금융기관들의 도덕적해이(모럴
해저드)에 관한 논란을 불식시킨 것도 한 성과라고 자부한다"며 "한국의
신용도를 볼때 만기 재연장에 적용한 금리 수준은 적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