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채권단이 기아자동차 처리 방향을 공개매각으로 잡아감에 따라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은 본격적인 자금확보 경쟁에 들어갔다.

현대나 삼성 모두 이제는 "돈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자금마련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분위기다.

현대와 삼성은 당초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후 증자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기아의 경영권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개매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더 많은 돈을 제시하는 쪽으로 기아를 넘기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 1,2위 그룹이 맞붙는다.

많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두 그룹 모두 외국 자금을 끌어들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최고경영진을 미국 등지에 보내 자본 도입선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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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의 기아자동차 인수자금 조달루트는 두가지다.

하나는 외국금융기관및 펀드들이 현대자동차에 자본출자토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열사 매각을 통한 자금확보다.

외국자본 끌어들이기는 이미 시작됐다.

현대자동차가 5천만달러의 CB(전환사채)를 발행,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에게 넘기기로 한데 이어 최근에는 정몽규 현대자동차 회장이
자금유치를 위해 직접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정 회장의 표면적인 출장목적은 미국 현지법인의 경영실태와 판매망 점검
이나 주요 일정은 미국 금융기관 방문으로 잡혀 있다.

현대에 투자하겠다는 미국의 펀드들이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우리회사에 투자하겠다고 문의해 오는 외국
금융기관들이 많다"며 "정 회장이 이들 금융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구체적인
자금을 유치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지난 17일 주주총회에서 정관을 고쳐 외국자금을
추가로 끌어들일 수있는 길을 터놓았다.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한 외국금융기관 또는 기타 외국인 투자 및 외자도입
에 관한 법률에 따른 외국인에게 3천만주까지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는
정관 7조2호4항이 그 근거다.

그동안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는 반증이다.

현대자동차 재경본부장인 이방주 부사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알 왈리드
왕자의 자금을 끌어들인 것과 비슷한 형태로 해외자금을 추가로 도입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운영자금으로 쓸 것이라는게 현대측의 설명이나 정황으로 보아 기아인수
자금으로 사용될 공산이 크다.

현대자동차의 재무상태는 나쁘지 않다.

현대자동차의 외화부채는 약 10억달러.

그러나 모두 장기부채다.

따라서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알 왈리드 왕자로부터 유치한 자금과 앞으로
들여올 외화는 일부 재무구조 개선에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아
인수자금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인수전이 본격화되면 현대중공업 등 계열사들의 협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기아자동차 인수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아자동차에 상당하는
규모의 계열사와 사업부문을 떼내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력 집중에 대한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나 여기에는 계열사를
팔아 인수자금을 마련한다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빅 딜(사업교환)"이라는 것은 상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현대의 의도대로
계열사가 제때 제대로 팔릴 수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아직 어느 계열사를 처분할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만약 처분할 계열사가 선정되면 깜짝 놀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다른 그룹이 충분히 눈독을 들일만한 조건을 제시할 것이란 암시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