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작가세계문학상 수상자 손종일(33)씨.

그의 작품에서는 눈물과 웃음이 한꺼번에 묻어난다.

걸쭉한 입심과 의뭉스런 행동.

수상작 "어린 숲"(전2권 세계사)에서 그가 보여주는 해학은 거칠면서도
따뜻하다.

그의 어법은 세련된 문장을 욕심내다 정작 중요한 얘기를 놓치는
요즘 세대의 글쓰기와는 판이하다.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성장사와 우리 시대의 풍속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바들비"라는 시골 면 소재지의 우시장 주변.

소란스런 이웃들로 들끓는 시골장터에서 한 소년이 다섯살부터 일곱살까지
엿본 세상살이다.

눈오는 날 널판지로 참새를 잡는 장면부터 시작돼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돼주는 가족과 이웃들의 세상사는 얘기가 눅진하게 펼쳐진다.

지서장인 아버지는 마을에서나 가정에서 엄청난 권력을 지닌 절대자다.

5남1녀중 셋째 아들인 "나" 임대평은 아버지와 형, 동생들의 틈새에서
절묘한 "시소 타기"로 삶의 법칙을 체득해간다.

황뫼산에 막내동생을 묻고 내려오는 길.

아버지는 들꽃을 가리키며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맑은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슬픔을 억누르며 아버지가 보여주는 세상의 저편은 땅과 꽃, 하늘과
바람의 경계가 없는 무색계다.

"어떻게 하면 맑은 눈을 가질수 있습니까" "지금의 니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일곱살이 된 나는 한밭댁과 뒷씸댁네, 작은 왈발이와 미옥이 할매집을
뒤로 하고 이곳을 떠난다.

20여년 후, 다시 찾아온 바들비에는 옛날의 소전도 사라지고 "푸릇푸릇
보릿대가 바람에 잘 말린 머릿결처럼 촤르르 쏠려왔다가 쏠려가는" 모습만
펼쳐진다.

하지만 그곳에 "온세계가 우리의 것이었으며, 우리는 온 세계의 것"이었던
유년기의 아름다운 기억은 훼손되지 않은채 남아있다.

작가는 "어릴때 빠졌던 우물, 그 깊은 속으로 두레박을 드리워 맑은
샘물을 길어내듯 금세 푸른 물이 떨어질 것같은 언어들을 평생 길어올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밥국물에서 우러나는 깊은 인간살이의 내음이 가득하다"
(권명아), "끈질긴 입담과 능숙한 방언 구사력이 돋보인다"(이문구)는
호평을 받았다.

그의 "어린 숲"이 앞으로 "우물"밖의 넓은 세상을 만나 어떤 나뭇잎들을
피워낼지 주목된다.

<고두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