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협조융자 관행이 벼랑끝에 몰렸다.

자칫 협조융자가 자취를 감출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무분별한'' 협조융자를 자제해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기 때문이다.

뒤집어보면 일시적인 자금난에 처한 기업을 살리기 위한 협조융자는 필요
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무리한 협조융자방식이다.

외부압력에 의한 자금지원은 자금흐름만 왜곡시킬 뿐이다.

협조융자에 대한 반대의견은 최근 둑이 무너진 듯 터져 나오고 있다.

18일엔 박태준 자민련총재가 협조융자를 구시대의 관치금융이라고 규정하고
더이상의 협조융자가 없도록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지난 15일엔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협조융자가 금지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비단 정치권과 일부 관료들 만이 아니다.

은행원 자신들도 협조융자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결국은 부실화될 기업에 잠시 수명을 연장해주는 조치라는 얘기다.

은행 실무자들은 협조융자로 인해 은행마저 동반 부실화될까 우려한다.

실제 그같은 사례도 생겼었다.

해태 뉴코아 등은 협조융자를 받은후 몇달도 지나지 않아 부도를 냈다.

그러나 협조융자는 IMF(국제통화기금)체제이후 최근까지 러시를 이루었다.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기업들의 부실을 "방치"할 경우 산업계는 물론 금융계
도 붕괴한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선 외채협상을 진행하는 마당에 대외적인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 때문에 협조융자가 땜방식 처방이라는 비난을 사면서도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협조융자는 늘어나면 늘수록 반대세력을 키워 갔다.

협조융자를 받은 기업들은 덤핑 수출과 수주로 국제시장에서 국내의 경쟁
상대를 농락했다.

같은 업계의 정상기업은 협조융자 기업으로 인해 예상치 않은 경쟁력 저하
를 감수해야 했다.

은행들은 특히 현금흐름 위주로만 협조융자 여부를 판단했기 때문에 자금
사정이 "적당히 나쁜" 기업들은 돈구경도 하지 못하는 이상현상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협조융자에 대해선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드셌다.

"망해가는 대기업엔 돈을 대주고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는 우량 중소기업은
왜 지원하지 않느냐"는 반발이었다.

사실 협조융자를 받은 대기업중엔 은행 심사역들이 자산실사를 거쳐 법정
관리를 권고한 업체도 있었다.

그런데도 은행장들은 협조융자를 결의했다.

여신심사라는 은행 고유의 기능이 무력화된 셈이다.

절차상의 문제도 적지 않았다.

형식은 은행장 자율결정이었지만 배후에 재정경제부 은행감독원 등 금융
당국이 개입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해당기업은 현재 하루하루를 겨우 넘어가고 있다.

수천억원의 돈을 중소기업에 풀었더라면 수백개는 살렸을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어쨌든 협조융자는 기로에 섰다.

협조융자는 서구식 용어로 신디케이트 론이다.

금융이 발달한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서도 상당히 활성화돼 있다.

물론 사업전망이 유망한 우량기업에 대해서다.

우리의 경우 부실기업에 대한 협조융자 금지가 아예 협조융자의 씨를
말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성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