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기업들의 연쇄 부도행진이 전업종으로 번지면서 그동안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산업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수입원자재 야적장이 텅텅 비어 있고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크레인의
모습도 을씨년스럽지만 부도를 냈거나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이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생산설비를 뜯어 외국으로 실어내는 모습은 처연하기만 하다.

IMF위기가 시작된지 불과 3개월여만에 산업기반이 이처럼 침하위기를
맞고 있다니 우리의 실물경제 뿌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올들어 불과 두달 사이에 내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30%가 줄고
산업생산도 10~15%나 감소했다.

1,2차 오일쇼크 때도 이처럼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수출 하나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지만 지난 2월까지의 수출증가율
11.2%중 금수출분을 빼면 실제 증가율은 1.8%에 불과하다.

고금리 및 자금경색으로 인한 기업의 연쇄도산사태는 언제 끝날지
지금으로서는 예측조차 할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나 국민 모두가 발등의 불인 외환-금융위기 탈출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급속도로 산업기반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산업기반의 안정없는 경제회복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산업기반의 고도화 안정화를 통한 궁극적인 경쟁력확보 없이는 경제의
안정성장이 보장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 또다시 위기가 재연될지
모른다.

때문에 단기적인 위기극복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장기적 안목에서
위기극복 후의 성장궤도 재진입을 위한 대비도 함께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내 산업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할수있는 수출산업의 고도화와 체질강화가 급선무다.

IMF체제로의 진입이후 우리 경제는 대외거래 부문에서는 흑자기조가
유지되고 있으나 이것이 환율면에서의 반사이익에 따른 수출증가와
국내경기 침체로 인한 수입감소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수출기반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모두가 입만 열면 "수출만이 살길" 이라면서도 정부조직 개편 이후
수출정책이나 일선기관의 수출업무는 적지않은 혼선을 빚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의 단기외채 만기연장으로 이제 외환위기는 한고비 넘긴
만큼 지금부터는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활력의 회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수출입신용장 개설과 원자재수입의 원활화 등 수출입관련
신용개선과 금리인하 노력이 급선무지만 보다 중장기적으로는 기술경쟁력
배양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있는 기업을 육성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여 수출기업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벼랑끝 위기를 넘겼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 외환-금융위기는
국민적 노력여하에 따라 비교적 짧은 기간내에 극복할 수도 있는 단기적
현상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국가 산업기반은 한번 붕괴되면 이를 회복하는데 긴 시간이
요구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