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사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아시아가 금융위기로 휘청대고 있다.

통합을 앞둔 유럽에선 막판 진통이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만은 전대미문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경제는 말그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인플레없는 적정성장"은 도무지 멈출지 않을 태세다.

주식시장도 힘찬 상승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기존의 경제주기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쓰자는 주장마저 나올정도다.

더구나 현재로선 미국을 견제할 경쟁국도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은 이 기회에 지구촌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위치를 굳히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은 최근 LA타임스에 "아메리카,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라는 시론을 통해 미국의 강력한 리더십 확립을 역설했다.

이를 옮겨싣는다.

<정리=김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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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국은 가히 "세계의 수퍼파워"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저변에 제국주의를 깔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팽창주의로 정의할 수 있다.

미국은 이제 일찍이 없던 새로운 파워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두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첫째는 아시아 금융위기나 AIDS 등 범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의 공조체제를 주도하는 일이다.

이젠 지구촌 한 귀퉁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그 파장이 전 세계로 미치게
됐다.

로버트 루빈 장관도 말했듯 세계는 이제 상호간의 연결고리를 끊을래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든 미국 국민들이 미국이 만끽할 수 있는 풍요를 골고루 누릴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각국이 안고 있는 "부의 고른 분배"라는 난제앞에 역사적인 이정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지난 5백여년간 이처럼 한 나라에 부와 권력이 집중됐던 역사가
없었다.

그 어떤 경제대국도 미국만큼 독보적인 경제력을 거머쥐지는 못했었다.

미국처럼 대적할 자 없는 월등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국가도 없다.

또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화를 이룩한 선례도 없다.

물론 역사상 초강대국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미국의 힘은 중국 스페인 영국 등 과거의 강국과는 본질부터
다르다.

스페인이나 영국의 대외지향적인 힘은 그 밑바탕에 제국주의가 버티고
있었다.

중국은 철저히 내부지향적이었다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외부를 지향하면서도 제국주의와는 무관한 대승적인 위용을
떨치고 있다.

르완다나 보스니아 사태에서부터 지구 온난화 에이즈 등 인류 공동의
숙제에 대한 성공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리더십은 비제국주의적인 기반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난 1920~30년대에 벌어진 세계 대공황은 리더십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는 범세계적인 질서를 주도할 리더십이 없었고 결국 전세계가
전쟁과 불황이라는 어두운 터널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최근 아시아 국가들이 겪고 있는 금융 및 경제 위기와 관련해서는 리더십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일년 남짓 전에 나는 각국의 경제 지도자들에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워할 줄 모르는 만용"이라고 경고한바 있다.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그야말로 위험한 투자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리스크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채 이곳 저곳에 투자를 벌이면 화를 자초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불행히도 이 예견은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몇달간 동남아 통화위기가 일파만파로 번지는 가운데 미국은 지도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리고 이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급한 불을 끈 후 남은 일은 화재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세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금융 메카니즘을 확고히 정착시켜야 한다.

두번다시 이들의 취약한 금융시스템이 세계경제를 뒤흔들지 못하게 하려면
강력하고 투명한 통화정책을 확립하도록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새로운 메카니즘을 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신흥 성장시장에서 무분별한 투자를 벌였던 상당수 투자자들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는 미국은 물론 국제 사회가 공감하는 바이기도 하다.

사실 아시아 위기 이전부터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의
모태가 된 브레튼 우즈 협정의 틀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었다.

급변하는 국제 금융의 흐름속에서 안정적인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클린턴 대통령도 헬리팩스와 나폴리에서 열린 두차례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국제 금융기구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역설했었다.

물론 현재로선 확실한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금융위기에 빠진 모든 국가에 무한정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명백한 것은 정답이 무엇이건간에 자유 시장경제 원리가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편으로 국내 문제에도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속에서 미국의 역량은 건실한 국력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국가적인 프로젝트는 대부분 성공적으로 추진돼왔다.

10여년전만해도 아시아 및 유럽국가들은 미국의 미래에 대해 불신을
감추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경제모델은 그 어떤 것보다도 성공적인 것으로
판가름났다.

물론 역동적인 시장경제 구조위에서 다져진 합리적이고도 민주적인 정부
조직의 승리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국민들이 승리의 열매를 고루 나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뉴욕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5살까지 생존할 확률이 중국 상하이보다
뒤진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

또 18세부터 50세까지의 건장한 미국남성중 2%이상이 교도소 생활을
한다는 것도 사회적인 기회 분배의 구조에 오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존적인 인간형을 양산해내는 기존의 복지시스템으로는 이같은 병폐를
치유할 수 없다.

미국이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없이 어떻게 조국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미국앞에 놓인 도전은 바로 세계에 던져진 도전이다.

또 지구촌의 공익은 미국의 국익과도 직결된다.

만일 우리가 21세기 국제 질서를 주도할 리더십을 확보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미국과 전세계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