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국정공백 사태로 최근 국가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한국경제의 국제적인 신인도가 재추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기업과 근로자, 정부가 임금 삭감및 조직 축소등 국난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을 약속는데도 유독 정치권만이 대승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해외금융기관에서는 실망과 불만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행정부 각부처의 상황이 어수선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 재정운용,
교육제도 마련등 현안사업들이 미루어져 자칫하면 국가행정 전반의 공백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신인도 추락 우려=정부조직법개정안 공포가 늦어짐에 따라 국내
금융기관의 단기외채 연장 협상에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27일 도쿄를 시작으로 내달 9일까지 10대 금융시장에서 진행되는
로드쇼(국가경제설명회)에 참석할 정부관계자들은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협상 실무단장인 재경원 정덕구 제2차관보는 "지난달 뉴욕협상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타결된 것은 당시 정부와 대통령당선자측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및
탁월한 위기관리능력, 노.사.정합의 등 한국의 개혁 가능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며 "새정부가 각료 임명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자 해외
금융기관에서는 전화를 통해 벌써부터 개혁작업의 차질우려와 노사갈등재연
등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만일 이번 외채만기연장 협상에서 만기연장 규모가 1백70억달러 이하에
그칠 경우 2주일간 협상을 연장하지만 이로 인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해외발행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외국인투자 유치에도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외국기업들이 한국의 여야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제도개선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우코닝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개편되는 재경부내에
외국인투자를 전담할 투자진흥과를 신설했지만 인사 지연으로 내달이후에나
실무자가 임명될수 밖에 없어 투자절차 간소화 등이 그만큼 늦어지게도 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도 25일자 칼럼에서 "김대통령은 직접 나서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외국자본은 한국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며
"올해 한국은 지난해보다도 더욱 어려울 것이며 20%이상의 고금리아래 많은
기업의 부도가 예상되고 은행들은 부실채권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고 보도
했다.

<>현안 표류=정부조직법 개정안 공포가 늦어짐에 따라 새정부는 신임
장관의 결심이 필요한 정책은 아예 추진을 못하고 있다.

이미 방향이 결정됐지만 곧바로 시행돼야 하는 일들도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다 각부처가 직제개편에 따른 인사이동까지 해야해 이래저래 일손을
못잡는 분위기다.

재경원의 경우 기획예산위원회및 예산청의 위치는 물론 옮겨 갈 대상자
선정도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처리지연으로 이미 짜놓은 추경예산을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 <>서울 제일은행 매각방법 <>부실금융기관 처리 <>외환위기 해소
<>종금사 폐쇄에 따른 후속금융안정대책 등 현안처리도 못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도 외국인의 국내토지 취득 금지완화및 경부고속철도 수정건설
계획, 그린벨트제도 개선 등 중요한 현안을 곧바로 처리해야 하지만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건교부는 새정부 출범직후 결론을 낼 방침이었지만 당분간은 추진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양수산부도 새정부출범과 함께 항만개발 등 굵직한 개발사업과 제도개혁
을 추진하기로 했었으나 미루어 놓고 있다.

교육부는 당초 26일쯤으로 예정됐던 99학년도 대학입시기본계획 발표일을
신임장관 결재이후로 늦춰 수험생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밖에 전체인원의 13%인 1백27명을 외교통상부및 중소기업청으로 넘겨야
하는 통상산업부는 전직원을 대상으로 잔류, 전출, 퇴직 등의 인사작업이
늦어지면서 사실상 업무마비상황에 빠져든지 오래다.

강봉균 장관이 청와대정책기획수석으로 옮김에 따라 정보통신부는 전부처중
유일하게 장관이 공석인 상황이 되기도 했으며 행정자치부로 새출발하는
내무부과 총무처 직원들도 직제개편안을 쳐다보고만 있다.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은 "국가부도 위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데도
일부 정치인들이 상황이 호전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큰 일"이라며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국가신인도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승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