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원 판사들의 금품수수의혹에 대한 진상이 밝혀졌다.

시민들은 모두 대법원의 조사결과에 허탈해 하고 있다.

양심의 보루 인 법관들이 무더기로 부정을 저지른 사건이 드러났기 때문
이다.

이로써 사법부내에 검은 돈거래가 횡횡한다는 통설이 확인된 셈이다.

대법원도 사건의 파장을 의식한 듯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돈을 받은 법관을 징계하고 의정부지원 판사 전원을 교체키로 했다.

고단위 처방이라는 설명을 잊지 않았다.

특히 특정법원의 판사 전원교체와 현직 법관의 교체는 사법사상 최초의
일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면서.

그러나 이 사건의 뒷맛은 개운치 않다.

사법부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사정의 성역임을 또다시 보여 주었기 때문
이다.

현직 법관이 장차 자신이 처리해야 할 사건을 맡게 될 변호사에게 돈을
받았다는 점이 이 사건의 골자다.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규명하기 어렵다고 치더라도 도덕적으론
크게 단죄받아 마땅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누리고 있는 사회적 명망만큼의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고
시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비리판사의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검찰수사도 요청하지 않았다.

판사들이 받은 돈은 판사실 운영비나 명절인사치례 명목으로 받은 떡값일
뿐이라는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직무와 관련된 뇌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 이면에는 자기 가족만은 다쳐서는 안된다는 조직제일주의와 특권의식이
작용한게 아닐까.

가재는 게편이라고 검찰도 손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법당국의 태도가 법조계는 복마전 이라는 불신감을 확대
재생산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이심기 < 사회1부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