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관가에도 "유력무죄"와 "무력유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정부 조직개편의 칼날이 정작 책임을 져야 할 힘 있는 경제부처나 엘리트
경제관료들은 피해가고 힘 없는 부처, 말단 공무원, 기능직 공무원에게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질타받던 재정경제원은 이번 개편으로 오히려 인력
증원효과를 얻었다.

신설되는 기획예산위원회 예산청 금융감독위원회에 인력을 파견하고 본부i
에서는 기능직만 줄일테니 말이다.

반면 지난해 2년 연속 대풍을 거둬 경제분야에서 유일하게 효자노릇을 한
농림부는 이번 조직개편으로 22.6%(1천32명)를 줄이게 생겼다.

기사회생한 해양수산부도 20.9%(9백38명), 산업자원부도 13.5%(1백27명)씩
줄었다.

이 때문에 농림부와 통상산업부가 함께 입주해 있는 과천청사 3동에서는
"1동(재경원 입주)이 져야 할 금융실정 경제실정의 책임을 3동이 졌다"거나
"재경원공무원들은 "언터처블"이고 만만한 부처만 항상 손댄다"는 불만의
소리가 높다.

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떠나는 공무원은 본부의 간부공무원보다는 대부분 산하기관이나
지방청 등 하위직급과 국.실장의 여비서 등 기능직들이다.

가장 많이 줄인다는 농림부에서조차 본부에서 줄이는 40명 가운데 32명이
기능직, 나머지 9백92명은 산하기관에서 줄인다.

그렇다면 사실상 확대재편되는 힘있는 부처의 경우 민간기업들이 하루에
몇십개씩 쓰러지는 경제위기의 고통분담을 전혀 안한다는 얘기다.

엘리트관료들이 고시준비를 하며 달달 외웠을 행정학원론은 고위공무원
일수록 지위에 따른 법적 책임이상의 도덕적 책임(responsibility)도 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책임이 큰 자리일수록 책임을 비켜가는 언터처블로 남아 있다면 IMF체제
극복은 요원하다.

김정아 < 사회1부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