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경회루 연못에서 준설작업중에 청동으로 만든 용이 나왔다고 해서
한때 화제가 됐다.

이번에는 그 용을 복제해 경회루 연못에 다시 "방생"키로 했다는 뉴스가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연못에서 잘 지내는 용을 꺼낸것이 IMF사태라는 나라의 불행을 가져
왔을지도 모른다는 미신이 문화체육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 모양이다.

정부의 그런 처사를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쯤으로
이해하면 그만이겠다.

그리고 미신을 믿는 행위도 문화다.

애교로 볼수도 있고 이 각박한 세상에 필요한 유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용이라는 동물은 임금과 출세같이 좋은 것은 모두 상징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섣달 그믐날 밤 잠들기 전에 용꿈 한번 꾸기를 갈망
하는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태몽으로 용꿈을 꾸고 싶어 하는가.

왕의 얼굴은 용안이고,왕의 옷은 용포이듯이 많은 좋고 거룩한 것들이 용의
권위를 빌려 행세를 한다.

"용의 눈물"이라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인기를 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같다.

경회루에서 문제의 용을 모셔 낸데 대한 불만을 선도한 것은 무속인들이었던
것같다.

무속인들의 압력에 정부가 굴복한 셈이다.

이것은 IMF 불황에도 아랑곳 없이 점집과 굿집만은 호황을 누리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삶이 고달프면 초능력에 기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의 하나
라고 하겠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이 점집을 찾는데도 우리는 익숙해
있다.

특히 용하다고 이름난 점집은 연일 만원사례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경제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 경회루 연못의 용을 다시 "방생"하는 것도
금붙이 내놓는 것 못지 않은 애국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용을 제집으로 돌려보내는 날짜를 대통령 취임식에 맞춘 것이
마음에 걸린다.

고속도로 준공도 광복절에 맞추기는 한다.

그저 뜻깊은 날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발상이었겠다.

그러나 용이 상징하는 막강한 권력과 정권이 바뀔 때면 줄을 서고 새
권력자의 시선을 끌고자 하는 게 관리들의 생리여서 뒷맛이 그렇게 상큼
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