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을 받아들인 결과는 처절한 경제주권 상실과
서방자본의 전횡, 실업자 양산이었다"

IMF의 역할을 놓고 국제적 논란이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가
최근(6일자) 이같은 내용으로 아르헨티나 경제의 현주소를 파헤친 심층 르포
기사를 게재, 외환위기에 빠진 국가들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타임스는 1면 일부와 8면 전체에 걸친 장문의 기사에서 아르헨티나는
90년대들어 "민영화-개방확대" 등 IMF의 처방을 받아들인 결과 <>저성장과
살인적 인플레 등의 거시 경제적 질곡에서 벗어난 반면 <>조세 등 경제정책
주권을 외국자본에 빼앗기고 <>실업자를 양산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폭로했다.

아르헨티나의 "비극"은 90년대들어 메넴 대통령 정부가 "자유시장 혁명"을
추진, 은행 등 금융기관은 물론 통신 전력 우편 철강 정유 등 당시 국영화돼
있던 대부분 기간산업을 민영화하기 위해 외국자본을 무제한 끌어들이면서
비롯됐다.

국영 철강회사를 인수한 시티은행 그룹 등 미국자본은 경영합리화를 최우선
과제로 선언, 무자비한 인원정리에 나섰다.

시티가 지난 92년 인수한 아세로스 사플라 철강공장의 경우 5천명의 종업원
가운데 7백9명만 남겼을 정도다.

심지어 농장들까지 "생산성 향상"을 내세워 한대로 80명의 기존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미국식 첨단 농기계를 다투어 구입했다.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직장인들이 졸지에 거리로 내몰렸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실업률은 17%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대신 아르헨티나가 얻은 것은 "성장"과 물가안정이다.

80년대 10년동안 경제규모가 12%나 오그라들었던 이 나라는 지난해 8%
(9월말 현재)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침과 저녁의 물가가 다를 정도로 치솟았던 인플레 역시 통화인 페소화
환율을 미국 달러화 가치와 일치시키는 고정환율제를 도입한뒤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성장과 안정이 얼마나 심각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희생
대가로 이뤄진 것인지는 정유회사인 YPF의 경우가 단적으로 보여 준다.

국영업체였던 이 회사는 82년부터 90년까지 9년동안 60억달러의 누적적자를
발생시킨채 5천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90년 민영화와 동시에 대대적인 "종업원 학살"을 개시, 무려
4천5백명을 잘라냈다.

덕분에 96년 9억달러의 흑자를 냈지만 숱한 실업자들의 "눈물"을 해결
하지는 못했다.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서방자본은 산업시설뿐 아니라 유통 레저 등의
분야까지 닥치는대로 아르헨티나의 "자산"을 사들였다.

조지 소로스가 2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투자회사 "이르사"의 경우
사무빌딩 초고급호텔 쇼핑몰 등을 거느린 아르헨티나 최대의 부동산 보유
업체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다.

미국 백화점업체 월마트가 아르헨티나 곳곳에 대형 쇼핑몰을 지으면서
자전거포 구둣방 등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일터까지 앗아가 버렸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더 큰 고민은 조세 등 경제정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교육 보건 의료 등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려
해도 외국계 기업들이 "세금부담이 높아지면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타임스는 한 해고 근로자의 말을 인용, "나라 곳곳에 람보와 터미네이터가
활개를 치고 있다. 이곳은 더 이상 나의 아르헨티나가 아니다"고 기사를
맺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