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2일 그룹을 이끌어온 노사장들을 경영일선에서 퇴진시키고
50대의 젊은 사장들을 전진배치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신동호 그룹 기조실 이사가 전무로 2단계 특진하는 발탁인사도 눈에
띄었다.

롯데그룹의 보수적인 생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만큼
파격적이다.

그런만큼 이번 인사는 그동안 자린고비경영으로 가장 IMF한파를 잘 견딜
체질이라고 믿어져온 롯데그룹에도 대변화가 올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구조조정 움직임은 당분간 ''정중동''일 것으로 예상
된다.

그룹의 안살림을 재정비하되 타사처럼 요란한 계열사 통.폐합이나
긴축정책은 많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는 그룹의 형편을 대외적으로 드러내기 싫어하는 롯데 특유의 기업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롯데는 경기가 좋을 때도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는 "자린고비경영"을
해왔다.

그만큼 기업경영의 거품이 적어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절실하지 않다는
의미다.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경비절감이나 인원감축으로 내홍을 겪고 있지만
롯데 계열사에선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임직원들도 "불만스럽던 내핍경영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롯데는 실제로 각종 경영지표에서도 건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96년말 현재 자산규모가 7조7천5백억원으로 재계 10위이지만 부채비율은
1백92%로 30대 그룹중 가장 낮다.

주력업종도 백화점 호텔 등 이른바 "현금장사"들이어서 캐시플로도 좋은
편이다.

롯데는 재계 현안인 총수의 사재출연에서도 운신의 폭이 넓다.

신격호 회장이 최근 개인재산 1천만달러를 쾌척했기 때문이다.

신회장은 이전에도 7백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전국을 강타한 IMF한파에서 롯데그룹이라고 완전히 자유로울수는
없다.

대규모 신규사업의 연기는 물론 중복사업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회장이 신년사에서 "우리그룹은 식품.유통.관광의 전문기업으로서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해외시장을 중점적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한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중복사업의 교통정리 =구조조정에선 롯데제과와 롯데삼강이 각각
월드콘과 구구콘으로 아이스크림에서 대결하듯 그룹내 중복사업의 교통정리가
우선 필요하다.

또 <>롯데삼강은 유지사업과 레토르트식품에서 <>롯데전자는 오디오시장의
쇠퇴로 <>롯데기공은 보일러의 수요감소로 <>롯데햄.우유는 수입육가공제품
의 저가공세로 각각 고전하고 있어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야 할 입장이다.

<>신규사업의 속도조정 =신규사업의 연기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잠실과 부산시의 롯데월드 건설은 그룹 최대의 현안.양대 프로젝트
모두 1조원이 넘게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롯데는 이를 위해 일본에서 3억-5억달러의 자금을 도입할 계획이지만
진행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그룹매출의 30%를 차지하는 롯데백화점은 최근 올해 예정된
신규출점을 대폭 축소조정했다.

롯데리아 역시 국내 출점보다는 중국 동남아 등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을 계획이다.

신회장의 2남인 신동빈 그룹부회장 역시 최근 "변화하는 조직"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구조조정의 변수로 꼽히고 있다.

<이영훈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