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인터뷰] 스티븐 브라운 <주한 영국대사>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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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브라운 주한 영국대사는 한국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사정이야 다르지만 요즘 한국이 처해 있는 경제위기가 지난 70년대 영국이
겪었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해 과거 영국의 경험이 크게 보탬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당시 영국정부가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추진했던 노동시장과 정부부문
개혁은 한국정부가 참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게 브라운 대사의 생각이다.
브라운 대사는 먼저 "본격 논의단계로 접어든 노동시장 유연성확보의
관건은 정치적 리더십과 국민의 태도변화"라고 강조했다.
정리해고의 불가피성과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과 "평생직장"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부문 개혁과 관련, 브라운 대사는 영국이 행정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행정개혁(Next Steps)과 시민헌장
(Citizen''s Charter)을 자세히 설명하고 "한국의 신정부가 고려해볼만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운 대사는 뉴욕에서 진행되고 있는 외채협상과 관련, 미국보다 많은
돈을 빌려준 유럽은행들이 소외되는 느낌이라며 "유럽은 경제적측면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한국에 있어서 미국 못지않게 중요한 파트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 양봉진 편집부국장이 브라운 대사를 만나 한국의 경제개혁추진상황에
대한 평가와 영국이 갖고 있는 소중한 경험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 편집자 >
=======================================================================
-대사께서는 지난해말 한 강연에서 환자(한국)는 의사(IMF)의 지시를
제대로 따라야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른바 "의사.환자론"을 내세워
한국이 IMF의 개혁프로그램을 철저히 이행해야 금융위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직도 그같은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까.
<> 브라운 대사 =물론입니다.
IMF개혁프로그램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만이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경제가 침몰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이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죠.
IMF가 적극 나선 것도 그같은 이유일 겁니다.
지난번 밝힌 의사.환자론은 계속 유효합니다.
-그러나 IMF가 제시한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르다보면 유동성문제가 발생해
일부 우량기업들이 흑자도산을 하는 등 그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
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한국경제뿐만 아니라 국제 채권단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IMF와의 협의를 통해 일부 조건들을 완화할 필요는 없겠습니까.
<> 브라운 대사 =프로그램재조정은 한국정부와 IMF가 협상을 통해 처리해야
할 문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영국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와 국제금융계로부터 신인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이들에게 한국정부가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길 밖에 없다는 얘기죠.
한국처럼 지난 76년 영국이 IMF구제금융을 받은 당시에도 IMF요구사항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와 정부내에서 이에 대해 격렬한 논란이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결국 IMF개혁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과 영국의 대외
신인도는 급속히 회복됐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IMF개혁프로그램을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습니다.
그의 거듭된 이행보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인가요.
<> 브라운 대사 =김당선자의 이행보장이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입니다.
외국투자자 입장에서 이는 분명 청신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약속이 약속으로 끝날 경우 이는 공약에 지나지 않죠.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많은 외국투자자들은 경제개혁과 관련, 한국정부가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금융산업개혁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의 금융산업은 그동안 "혼란(Mess)" 그 자체였습니다.
개혁이 절대 필요한 부문이죠.
이미 한국정부는 2개 시중은행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부 부실 금융기관의 영업정지조치도 내렸습니다.
현재까지 한국정부가 취한 개혁조치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약속을 뒷받침하는 실천이 뒤따를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투자란 반드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번에 매각될 국내은행들에 대해 영국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들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 브라운 대사 =물론 지금 당장이야 경제상황이 좋지않아 별로 매력적인
딜(Deal)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기업을 인수할 때 1~2년이라는 단기간에 승부를 내겠다고 하는
기업은 아마 없을 겁니다.
최소한 5년정도의 중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투자를 하죠.
특히 한국은 근면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갖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기업들은 은행을 비롯한 한국기업인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외국기업들이 한국기업 인수시 노동시장의 유연성확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브라운 대사 =금융기관 인수시 단기외채를 제외하고 외국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부문이 바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입니다.
이는 한국기업들의 대영투자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영국이 한국 기업들에 인기가 있는 이유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특히 정리해고에 대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브라운 대사 =영국경험에 비춰봤을 때 무엇보다 정치적 리더십을 꼽고
싶습니다.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국민들에게 가기 싫지만 국가경제회생을
위해 반드시 가야할 길임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국민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껏 한국 국민들은 한 직장에 입사해 평생 그 직장만을 위해 일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해온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만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변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김대중 당선자는 최근 발족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문제와 관련,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발 등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 브라운 대사 =한국의 상황은 지난 70년대 영국이 같은 문제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와 다릅니다.
영국 근로자의 경우 당장 일자리를 잃더라도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정부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그렇지 못합니다.
앞으로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실업대책 등 한국 나름의 묘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노동시장개혁과 함께 한국의 신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또다른
과제는 효율적인 작은 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영국정부는 많은 경험을 축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브라운 대사 =정부부문 개혁에 관한한 영국은 지난 80년대 이래
최근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지난 88년에 도입된 넥스트스텝스(Next Steps)프로그램은 커다란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넥스트스텝스란 정부 부처의 정책입안기능과 집행기능을 구분한 후 집행
업무를 별도로 구성된 사업소로 대폭 이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공무원신분을 보장받습니다.
95년말까지 국세청 소비세청 등 1백9개의 사업소가 설립돼 전체 공무원의
63%가 이들 사업소에 고용돼 있습니다.
넥스트스텝스에 의한 정부기관 민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추진될 예정입니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고용자수는
지난 80년 6백54만6천명에서 4백90만9천명으로 25%정도 축소되는 효과를
봤습니다.
여기서 하나 중요한 것은 개혁의 연속성입니다.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을 때도 이전 정권이 추진해오던
정부부문 개혁내용을 일부는 수정을 가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수용해
연속성을 유지해왔다는 점입니다.
-넥스트스텝스프로그램에서는 사업소장의 역할과 기능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브라운 대사 =사업소장은 과거와 달리 공개경쟁을 통해 채용됩니다.
능력위주로 뽑는다는 얘기입니다.
주로 3년단위의 계약직으로 고용되는 이들에겐 일부 인사 및 급여결정권을
비롯해 상당한 자율권과 재량권이 주어집니다.
이들은 소속부처의 장차관들에게 직접 업무보고를 합니다.
중간 보고단계를 대폭 줄여 업무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자율권이 큰 만큼 책임도 뒤따릅니다.
만약 예산운영 및 행정서비스질향상 등 고용당시 세운 경영상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재계약은 힘들다고 봐야 합니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죠.
-공무원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대민서비스 질이 나빠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브라운 대사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지난 91년 7월에 시민헌장(Citizen''s Charter)을 도입해 공공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넥스트스텝스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입된 시민헌장을 통해 시민들은
제공받을 공공서비스 수준의 기준(Standards)을 미리 부여받게 돼 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시죠.
<> 브라운 대사 =예를 들어 병원들은 환자들을 일정시간이상 기다리지
않게 해야 하며 그 이상 기다릴 경우 그에 따른 사과와 설명을 정부나 공공
기관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시민의 권리가 보장돼 있습니다.
철도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연착시간에 대한 허용범위가 정해지고 그 기준을 넘을 경우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같은 시민헌장외에 영국정부는 불필요한 행정적인 절차를 모두
없앴습니다.
운전면허증 갱신이 좋은 예입니다.
이전에는 3년에 한번씩 면허증을 갱신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한번 면허증을 발급받게 되면 70세가 될 때까지 갱신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70세가 되면 계속 운전을 해도 무리가 없는 건강상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해 제출하면 됩니다.
-현재 뉴욕에서 진행중인 단기외채협상이 지나치게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어 일부 유럽은행들의 불만이 적지않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영국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 브라운 대사 =최근 2개월동안 임창열 부총리 등 한국정부관계자들과
대화의 기회를 자주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국가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지원노력을 한국정부가 잘
이해하고 있어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럽계 은행들은 한국의 단기외채 상환연장과 함께 장기채로
전환하는데 매우 적극적입니다.
한국의 외채중 유럽계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국보다 훨씬 큽니다.
작년 6월 현재 한국의 민간외채는 일본계 은행이 2백30억달러로 가장 많고
독일이 1백8억달러, 프랑스가 1백1억달러, 영국이 60억달러인데 비해 미국계
은행들은 1백억달러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 인사의 잦은 방한 등 미국의 움직임이
활발해 상대적으로 유럽계 은행들이 빛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외채협상 등 경제적으론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한국에 있어서
유럽의 중요성은 미국 못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정리=김수찬 기자 >
[[ 브라운대사 이력 ]]
<>1976~77 영국 외무부 근무
<>1989 영국 통산부 근무
<>1989~94 주 호주 영대사관 총영사
<>1994~97 주중 영대사관 상무참사관
<>1997~현재 주한 영국대사
[[ 학력 ]]
왕립사관학교(샌드허스트) 졸업
서섹스대학 졸업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6일자).
많다.
사정이야 다르지만 요즘 한국이 처해 있는 경제위기가 지난 70년대 영국이
겪었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해 과거 영국의 경험이 크게 보탬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당시 영국정부가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추진했던 노동시장과 정부부문
개혁은 한국정부가 참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게 브라운 대사의 생각이다.
브라운 대사는 먼저 "본격 논의단계로 접어든 노동시장 유연성확보의
관건은 정치적 리더십과 국민의 태도변화"라고 강조했다.
정리해고의 불가피성과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과 "평생직장"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부문 개혁과 관련, 브라운 대사는 영국이 행정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행정개혁(Next Steps)과 시민헌장
(Citizen''s Charter)을 자세히 설명하고 "한국의 신정부가 고려해볼만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운 대사는 뉴욕에서 진행되고 있는 외채협상과 관련, 미국보다 많은
돈을 빌려준 유럽은행들이 소외되는 느낌이라며 "유럽은 경제적측면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한국에 있어서 미국 못지않게 중요한 파트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 양봉진 편집부국장이 브라운 대사를 만나 한국의 경제개혁추진상황에
대한 평가와 영국이 갖고 있는 소중한 경험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 편집자 >
=======================================================================
-대사께서는 지난해말 한 강연에서 환자(한국)는 의사(IMF)의 지시를
제대로 따라야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른바 "의사.환자론"을 내세워
한국이 IMF의 개혁프로그램을 철저히 이행해야 금융위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직도 그같은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까.
<> 브라운 대사 =물론입니다.
IMF개혁프로그램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만이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경제가 침몰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이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죠.
IMF가 적극 나선 것도 그같은 이유일 겁니다.
지난번 밝힌 의사.환자론은 계속 유효합니다.
-그러나 IMF가 제시한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르다보면 유동성문제가 발생해
일부 우량기업들이 흑자도산을 하는 등 그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
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한국경제뿐만 아니라 국제 채권단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IMF와의 협의를 통해 일부 조건들을 완화할 필요는 없겠습니까.
<> 브라운 대사 =프로그램재조정은 한국정부와 IMF가 협상을 통해 처리해야
할 문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영국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와 국제금융계로부터 신인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이들에게 한국정부가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길 밖에 없다는 얘기죠.
한국처럼 지난 76년 영국이 IMF구제금융을 받은 당시에도 IMF요구사항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와 정부내에서 이에 대해 격렬한 논란이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결국 IMF개혁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과 영국의 대외
신인도는 급속히 회복됐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IMF개혁프로그램을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습니다.
그의 거듭된 이행보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인가요.
<> 브라운 대사 =김당선자의 이행보장이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입니다.
외국투자자 입장에서 이는 분명 청신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약속이 약속으로 끝날 경우 이는 공약에 지나지 않죠.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많은 외국투자자들은 경제개혁과 관련, 한국정부가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금융산업개혁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의 금융산업은 그동안 "혼란(Mess)" 그 자체였습니다.
개혁이 절대 필요한 부문이죠.
이미 한국정부는 2개 시중은행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부 부실 금융기관의 영업정지조치도 내렸습니다.
현재까지 한국정부가 취한 개혁조치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약속을 뒷받침하는 실천이 뒤따를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투자란 반드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번에 매각될 국내은행들에 대해 영국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들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 브라운 대사 =물론 지금 당장이야 경제상황이 좋지않아 별로 매력적인
딜(Deal)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기업을 인수할 때 1~2년이라는 단기간에 승부를 내겠다고 하는
기업은 아마 없을 겁니다.
최소한 5년정도의 중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투자를 하죠.
특히 한국은 근면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갖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기업들은 은행을 비롯한 한국기업인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외국기업들이 한국기업 인수시 노동시장의 유연성확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브라운 대사 =금융기관 인수시 단기외채를 제외하고 외국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부문이 바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입니다.
이는 한국기업들의 대영투자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영국이 한국 기업들에 인기가 있는 이유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특히 정리해고에 대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브라운 대사 =영국경험에 비춰봤을 때 무엇보다 정치적 리더십을 꼽고
싶습니다.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국민들에게 가기 싫지만 국가경제회생을
위해 반드시 가야할 길임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국민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껏 한국 국민들은 한 직장에 입사해 평생 그 직장만을 위해 일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해온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만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변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김대중 당선자는 최근 발족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문제와 관련,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발 등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 브라운 대사 =한국의 상황은 지난 70년대 영국이 같은 문제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와 다릅니다.
영국 근로자의 경우 당장 일자리를 잃더라도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정부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그렇지 못합니다.
앞으로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실업대책 등 한국 나름의 묘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노동시장개혁과 함께 한국의 신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또다른
과제는 효율적인 작은 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영국정부는 많은 경험을 축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브라운 대사 =정부부문 개혁에 관한한 영국은 지난 80년대 이래
최근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지난 88년에 도입된 넥스트스텝스(Next Steps)프로그램은 커다란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넥스트스텝스란 정부 부처의 정책입안기능과 집행기능을 구분한 후 집행
업무를 별도로 구성된 사업소로 대폭 이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공무원신분을 보장받습니다.
95년말까지 국세청 소비세청 등 1백9개의 사업소가 설립돼 전체 공무원의
63%가 이들 사업소에 고용돼 있습니다.
넥스트스텝스에 의한 정부기관 민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추진될 예정입니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고용자수는
지난 80년 6백54만6천명에서 4백90만9천명으로 25%정도 축소되는 효과를
봤습니다.
여기서 하나 중요한 것은 개혁의 연속성입니다.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을 때도 이전 정권이 추진해오던
정부부문 개혁내용을 일부는 수정을 가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수용해
연속성을 유지해왔다는 점입니다.
-넥스트스텝스프로그램에서는 사업소장의 역할과 기능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브라운 대사 =사업소장은 과거와 달리 공개경쟁을 통해 채용됩니다.
능력위주로 뽑는다는 얘기입니다.
주로 3년단위의 계약직으로 고용되는 이들에겐 일부 인사 및 급여결정권을
비롯해 상당한 자율권과 재량권이 주어집니다.
이들은 소속부처의 장차관들에게 직접 업무보고를 합니다.
중간 보고단계를 대폭 줄여 업무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자율권이 큰 만큼 책임도 뒤따릅니다.
만약 예산운영 및 행정서비스질향상 등 고용당시 세운 경영상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재계약은 힘들다고 봐야 합니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죠.
-공무원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대민서비스 질이 나빠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브라운 대사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지난 91년 7월에 시민헌장(Citizen''s Charter)을 도입해 공공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넥스트스텝스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입된 시민헌장을 통해 시민들은
제공받을 공공서비스 수준의 기준(Standards)을 미리 부여받게 돼 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시죠.
<> 브라운 대사 =예를 들어 병원들은 환자들을 일정시간이상 기다리지
않게 해야 하며 그 이상 기다릴 경우 그에 따른 사과와 설명을 정부나 공공
기관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시민의 권리가 보장돼 있습니다.
철도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연착시간에 대한 허용범위가 정해지고 그 기준을 넘을 경우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같은 시민헌장외에 영국정부는 불필요한 행정적인 절차를 모두
없앴습니다.
운전면허증 갱신이 좋은 예입니다.
이전에는 3년에 한번씩 면허증을 갱신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한번 면허증을 발급받게 되면 70세가 될 때까지 갱신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70세가 되면 계속 운전을 해도 무리가 없는 건강상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해 제출하면 됩니다.
-현재 뉴욕에서 진행중인 단기외채협상이 지나치게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어 일부 유럽은행들의 불만이 적지않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영국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 브라운 대사 =최근 2개월동안 임창열 부총리 등 한국정부관계자들과
대화의 기회를 자주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국가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지원노력을 한국정부가 잘
이해하고 있어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럽계 은행들은 한국의 단기외채 상환연장과 함께 장기채로
전환하는데 매우 적극적입니다.
한국의 외채중 유럽계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국보다 훨씬 큽니다.
작년 6월 현재 한국의 민간외채는 일본계 은행이 2백30억달러로 가장 많고
독일이 1백8억달러, 프랑스가 1백1억달러, 영국이 60억달러인데 비해 미국계
은행들은 1백억달러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 인사의 잦은 방한 등 미국의 움직임이
활발해 상대적으로 유럽계 은행들이 빛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외채협상 등 경제적으론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한국에 있어서
유럽의 중요성은 미국 못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정리=김수찬 기자 >
[[ 브라운대사 이력 ]]
<>1976~77 영국 외무부 근무
<>1989 영국 통산부 근무
<>1989~94 주 호주 영대사관 총영사
<>1994~97 주중 영대사관 상무참사관
<>1997~현재 주한 영국대사
[[ 학력 ]]
왕립사관학교(샌드허스트) 졸업
서섹스대학 졸업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