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기업 감시자''로서의 역할만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면 한국의 대기업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최근 포스코경영연구소 초청으로 방한한 요시토미 마사루 일본 장기신용은행
종합연구소 부이사장은 "한국의 금융개혁은 물론 대기업개혁의 초점은 은행의
독립성 확보에 맞춰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경제기획청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요직을
거친 요시토미 부이사장은 일본내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고 있으며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특별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16일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을 만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폭넓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경제위기는 은행과 외환부문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최근 1주일동안 원화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고 주가는 상승세를 보여
최악의 상황은 일단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금융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은행위기와 외환위기는 서로 상승작용을 하고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먼저 부실화 등으로 은행위기가 닥치면 외국금융기관들이 부채상환연장을
기피하게 되고 외환위기가 초래된다.

따라서 이 부문의 개혁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반면 은행개혁은 구조개혁이므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따라서 우선 외채상환연장 등을 통해 외화유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등과의 협상이 결실을 맺으면서 최근
외화유출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은행 등 금융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기본적으로 한국의 은행문제는 대기업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은행이 독립성을 상실해 은행 본래의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돈을 빌려가는 기업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기업이 대출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도 없었다.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성장가능성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리스트럭처링
을 유도하지도 못했다.

결국 은행이 이같은 모니터링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은행개혁의
관건이다"

-김대중 당선자측은 최근 대기업개혁을 위한 강도높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게 바람직한가.

"먼저 오너와 경영인이 분리되지 않아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재벌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경영투명성 제고는 물론 계열사간 빚보증을 해소하고 결합재무제표가
조기에 도입돼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감시자로서 은행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은행의 독립성 확보로 은행 스스로 대출관행을 바꾸게 되면 기업에 대한
대출관행도 자연히 개선될 것이다.

김용환 비대위 위원장도 은행의 개혁을 통해 재벌문제를 해결해 나갈 계획
이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주식시장도 기업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영실패로 주가가 하락하게 되면 곧바로 적대적 M&A(인수합병)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방만한 기업 경영관행은 사라질 것이다.

다만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 견제는 미국처럼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에는 은행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지난해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등 국제적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도를 6단계나 하향조정했다.

한국이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금융기관 노동시장 재벌 등 경제개혁이 필요한 부문에서의 개혁여부에
달려있다.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신용도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다.

반면 개혁이 지지부진하면 지금처럼 정크본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김대중 당선자와 김용환 비대위 위원장에게서 강한 개혁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정리해고 도입, 대기업개혁 등 위기극복을 위한 계층간 합의가 원만히
이루어지고 정부도 조직축소 등을 통해 솔선수범하면 위기극복은 시간문제
라고 본다"

< 박영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