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저 공장을 한 번 돌려보는게 소원이었지만 IMF 때문에 이젠
그것도 틀린 것 같습니다"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현장에서 한 근로자는 시커멓게 녹슬어 가고 있는 B지구(코렉스설비)를
가리키며 비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사가 중단된 공장들은 때마침 중국쪽에서 불어온 흙바람에 덮여 더욱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불과 몇해전만 해도 한보철강의 성장속도는 이같은 표현이 딱 맞았다.

보통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업구상, 밑도끝도 없이 계속된 금융지원과
정치권의 비호속에서 한보철강은 "위대한 서해안시대"를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경영방식은 곧 종점으로 치달았다.

꼭 1년전인 지난해 1월23일 한보는 끝내 부도를 냈고 "정경유착"
"차입경영" 등 한국경제의 온갖 모순을 끌어안은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갔다.

"지난 1년간의 마음고생은 말도 못합니다.

주위의 눈총을 참아가며 남은 임직원들은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5년째 임금인상이 동결됐고 보너스는 꿈도 못꾸지만 불평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나영무 총무이사는 "3천명이 넘던 직원이 1천3백여명으로 줄었지만 매출은
50% 이상 늘었다"고 그간의 자구노력을 소개했다.

부도가 난 후 임직원들은 회사가 보유한 고급차량을 내다팔고 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다.

1백20여명이 북적대던 서울사무소의 근무직원도 7명으로 줄였다.

임원들은 평직원과 같은 근무복에 같은 식사를 했다.

대신 열연과 봉강공장이 들어선 A지구의 가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당진제철소는 삽교천의 지류를 사이에 두고 A,B 두지구로 구성됐으며
B지구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홍보실 관계자는 "부도직전 50%에 머물던 A지구의 가동률이 1백%로
향상되고 제조원가가 t당 29만3천원으로 2만원 가량 낮아지며 작년 10월엔
흑자기반까지 마련됐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젠 희망이 보인다"고 들뜨던 임직원들의 마음은 IMF의 한파로
다시 꺾여버렸다.

고철 등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수요업체들이 부도가 나며 판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IMF라도 빨리 끝나야 뭔가 돼도 되겠다"는 한 임원의 푸념은 한국경제가
처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보그룹은 73년 조그만 건설업체에서 시작, 불과 20년만에 계열사 26개를
거느린 재계 14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시장경쟁논리를 외면한채 자기자본의 18배가 넘는 부채를 끌어 쓴
차입경영은 출발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한보식 부도사태는 이후 진로 기아 한라 등 비슷한 성장과정을 가진
기업들에서 재연됐고 끝내 한국이 국가부도의 위기에 몰리는 시발점이 됐다.

한보의 회생방향은 현재 미완성인 B지구를 포철이 임차경영하고 코렉스
설비는 외국업체 등에 매각하는 쪽으로 잡혀가고 있다.

그러나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않다.

"1조원이 넘게 투자된 설비를 돌려보지도 않고 1~2천억원에 매각해버리는게
과연 국가경제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냐"는 주장이다.

기업의 성장 못지않게 퇴출시키는 속도 또한 "과속"이 있어서는 안된다는게
현지의 분위기인 셈이다.

< 당진=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