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직자들의 행동거지를 보면 모든 부문이 변해도 공직사회만은
구태의연한 모습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권교체기에는 으레 공직사회의 기강이 해이해져 국정표류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라지만 이번 경우는 지난번 김영삼 정권의 출범 때 겪은 복지부동에서
한발 더 나아간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처음있는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와 정부조직개편을 앞두고 많은 고위직
공무원들이 업무는 뒷전인채 인사청탁과 연줄을 찾느라 허둥대고 있는
모습이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만나자는 고위공무원 때문에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중간간부와 하위직들은 앞으로 있을 인사에 촉각을 세우느라
일선 민원업무마저 제때 처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정부 각 부처들이 산하단체 등을 동원해
"우리 조직만은 살려야 한다"며 치열한 로비전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은
부처이기주의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는 것같아 추악하기 이를데 없다.

이해집단간 대립과 갈등은 정권교체기에 어느나라에서든 나타날 수있는
현상이며 그같은 집단간의 갈등국면을 풀어주는 일이 행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국가기관들이 본분을 망각한채
지나치게 영토분쟁에 몰두하고 있는 인상이다.

미증유의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모두가 고통분담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는 마당에 이를 솔선수범하고 방향타를 굳게 쥐어야할 공직사회가
열 일 젖혀두고 제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수 없다.

물론 공무원들도 당장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를 정부조직 개편에
불안해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넓은 안목으로 정부의 구조조정작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구조조정작업이 절박한 경제위기에서 비롯됐지만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면서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나라마다 제각각 뼈를 깎는
구조개혁과 군살빼기에 여념이 없는 세상이다.

여기에는 민간, 기업, 행정부 가릴것 없이 범지구적 차원에서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편법으로서가 아니라 정보통신혁명과 새 국제경제질서의
대두가 국제경쟁의 질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데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기도
하다.

이같은 세계적 추세와 비교할 때 우리 공직사회의 자세는 너무나 안일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경제위기 극복 뿐만 아니라 21세기 국가전략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조직개편과 공직사회의 개혁은 거스를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과거처럼 정부개혁이 헛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치적 상황에 구애됨이
없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

공직사회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개인의 보신보다는 구국과 위민을
행동준거로 삼아 위기극복에 앞장서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