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를 맞아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에 빼앗겼던 주도권을 다시
탈환하고 있다.

그동안 백화점 할인점등 막강한 바잉파워를 갖춘 대형유통업체들에 밀려
제목소리를 못내던 제조업체들이 납품가격과 공급물량등을 자체적으로
결정하는등 위상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대량구매 대량판매의 무기를 갖고 있는 할인점에 납품가격
결정권등을 넘겨줬던 제조업체는 최근들어 가격결정권을 다시 행사하고 있다.

특히 라면식용유 밀가루등 생활필수품을 제조하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그동안 할인점들이 제시한 납품가격을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였으나 이제는
납품가격은 물론 공급물량까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환율폭등으로 원료수입가격이 급등, 생산물량을 줄이게 되면서 제조업체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

유통업체마다 물량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제한된 물량을 공급하는
제조업체를 앞다퉈 상전으로 모실수밖에 없게 된것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종전에는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 직접 상품을
배달해줬으나 이제는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창고까지 직접 차를 몰고 물건을
가지러간다"고 말했다.

오뚜기식품의 최광명과장은 "예전에는 유통업체 구매담당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라면을 구입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요즘들어서는 오히려 유통업체직원들이
직접 찾아와 공급해달라고 하소연하고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백화점에 입점해있는 제조업체들도 급속도로 주도권을 되찾고 있다.

특히 의류업계는 지난해부터 대형제조업체들의 부도가 잇달은데다 살아남은
업체들마저 대대적 브랜드축소를 서두르고 있어 백화점마다 브랜드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이에따라 고급브랜드에 밀려 그동안 백화점입점은 꿈도 꾸지못했던 듀,
이쏘등 상당수 중소의류브랜드들마저 상대적으로 매출실적이 좋은 점포만을
골라서 들어가고 있다.

한 백화점의류바이어는 중소의류제조업체조차 입점전에 백화점의 경영
상태를 알아보기위해 재무제표를 요구하고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백화점바이어들도 그전에는 앉아서 입점을 원하는 브랜드중에서 고르면
됐지만 이제는 제조업체마다 찾아다니며 입점을 부탁해야만 하는 처지이다.

모 백화점관계자는 "최근 입점키로한 6개브랜드중 5개브랜드가 바이어가
직접찾아가 통사정해 끌어온 것"이라며 "이제 서로 들어오려는 브랜드중
앉아서 고르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이러한 유통업체에 대한 제조업체의 주도권장악이 단기적으로
제품가격상승요인으로 작용해 소비자에게 불리할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류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