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공정거래법상 30대기업군의 상호지급보증은 현행 자기자본의 2백%에서
금년 3월말까지 1백%로 축소하고 2001년까지는 완전 해소하도록 되어 있다.

최근 IMF의 권고를 계기로 이 시기를 99년으로 앞당기자는 주장도 있다.

상호지급보증과 상호출자를 무기로 선단식 경영체제를 구축하여 계열기업의
도산이 그룹전체의 도산, 나아가서는 이들에게 자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도산으로까지 연결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하다.

모든 기업들이 경영의 투명성을 유지하여 자기신용으로 살아가게 해야만
건실한 기업은 경쟁력이 더욱 강화되고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조속히
퇴출하여 사회적 비용을 줄일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상호지급보증을 감축 또는 해소하는 것이 단순히 이들 기업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상호지급보증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은행이 보증없이 신용으로 대출을
해주거나, 기업이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하여 대출을 갚아야 한다.

은행이 신용이 없는 기업에 신용으로 대출을 해줄리 만무하고, 설사
신용대출을 해준다 하더라도 대출의 위험도가 높아져 은행의 BIS비율이
낮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해주거나 대출금 회수가 불가피하다.

현재 양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잔액은 1조4천억원을 상회하고, 보증을
받은 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보증기금이 대신 물어준 금액이
2천억원을 넘고 있어 기존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데도 턱없이 부족하다.

대출금 회수는 부동산이나 계열기업의 매각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기업들의 대규모 연쇄도산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보증이란 신용력이 약한 자에게 자신의 신용을 이전하는 일종의 여신행위로
대출과 본질적으로 다를바 없다.

빌려줄 돈이 있으면 굳이 보증을 할 필요가 없다.

최근 한 정책당국자는 한술 더떠 30대그룹을 포함한 모든 기업의
상호채무보증은 완전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바 있다.

이 땅에 기업간의 보증제도는 없애야 한다는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현재와 같이 기업간의 상호협조가 중요시되는 이른바 네트워크 시대에는
기업간의 보증은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중의 하나다.

선진국도 우리의 지급보증과 같은 개념의 "guarantee"나 보다 더강한
개념인 "acceptance"가 있고 "letter of awareness,letter of comfort,
letter of support" 등 모기업이 계열기업의 신용을 보완해 주는 다양한
형태의 보증제도가 존재하고 있다.

벤처기업을 육성한다고 하는데 물적담보가 없이 지적재산권만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제3자의 보증이 없이 과연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겠는가.

기업간 상호지급보증을 줄이자는 것은 그 병폐를 줄이자는 것이지
그 장점마저 버리자는 것은 아닐게다.

계열기업간의 지급보증도 비계열기업과 동등한 기준(arm"s length rule)이
적용된다면 문제가 될 게 없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주장도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공정한 경쟁체제를
구축하고 기업의 선단식 경영체제가 아닌 전문화된 대기업체제를 지향하기
위해 현재 악용되고 있는 지급보증제도의 폐해를 없애자는 것이지
지급보증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라는 외압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우리 나름의 목적과 다를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겉으로는 경영의 투명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속마음은 우리 대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자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위한 IMF식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독일과
일본식이 아닌 영-미식 자본주의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미식이 반드시 옳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J 스티그리츠, M 포터, L 서로 등 미국의 내로라 하는 학자들도 한
때 미국의 경쟁력이 약해진 것이 영-미식 자본주의 탓이라며 독일과
일본식의 자본주의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바 있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자본비용과 기업의 퇴출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시중에는 우리경제를 이렇게 만든 데는 어설픈 어터케(ATKE:American
Trained Korean Economist)들이 책임이 크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를 무조건 부정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역사나 제도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속에서 교훈을 얻자는
것이다.

현재 보기에는 불합리한 제도라 할지라도 그 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판단하에서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지급보증을 축소하여 재벌들의 전근대적인 행태를 바로 잡아야 하는
데는 이론이 있을수 없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무엇이 국가경쟁력인 기업의 경쟁력을
가장 강화시킬수 있는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