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대처"( Thatcher )
이제는 영국정치의 뒤안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가 뿌려놓은
정치.경제.이념적 씨앗은 아직도 영국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고실업사태와 제조업의 몰락 등을 몰고온 대처 정부의 일부 실정을
들어가며 대처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79년
그의 집권은 76년 IMF관리에 들어갔던 영국경제를 다시 세계 경제열강의
반열에서 밀리지 않게 한 계기이자 "1등 공신"이었다는게 영국인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영국인들이 그를 회고할 때면 세번의 큰 전쟁을 치른 인물로 묘사한다.
아르헨티나와 벌인 82년 포클랜드( Falklands )전쟁, 스카길( Scargill )이
이끄는 84~85년 광산노조와의 전쟁, 그리고 79년에서 89년까지 10년동안
총리직을 걸고 "합의정치"( Consensus Politics )와 벌인 전쟁이 그것이다.
물론 그는 이들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그의 이른바
"신념정치"( Conviction Politics )를 구현, 중병에 걸려 헤매던 영국을
다시 재건했다는게 영국인들의 평가다.
말 그대로라면 "합의정치"보다 좋은 것은 없다.
매사 다른 사람의 합의와 중의를 모아 결론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일을
추진할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문명사회의 대전제인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론 찬성, 각론 반대"식 이기주의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는 현상이다.
아마 임기중 김영삼 대통령처럼 많은 위원회를 운영한 정부도 없을 것이다.
노사개혁위원회를 위시하여 금융개혁위원회 교육개혁위원회 행정쇄신위원회
세제개혁위원회 등 굵직한 것만 거론해도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물론 위원회란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설치한 위원회중 그 어느 것도 성공적이지
못했다는게 우리의 기억이다.
논의의 흐름이 항상 양비 내지 양시적이었을뿐 아니라 대통령 자신 또한
정치적 산술계산에 급급하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시간과 자원만
허비하고만 것이 대부분이었다.
결심이 섰다 하면 대처 총리처럼 전쟁이라도 치르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보이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사람들의
평가다.
"내 손에 흙 묻히기는 싫으니 너희들이(위원회)무언가 만들어 오라"는
식의 무소신 정치가 오래 지속된 결과가 결국 국가경제를 IMF 통치시대의
파국으로 몰아넣었다는 주장이다.
영국 대처 총리가 말하는 "신념정치"가 그 의미와 진가를 지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45년 이후 영국정치는 "합의정치"라는 그럴듯한 상자속에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 본질은 기득권층과의 "야합(야합)정치"였다는게 대처 총리의
주장이다.
당시 영국의 더 타임스( The Times )는 이를 두고 "케케 묵은 클럽
멤버들간의 합의( old clubabble consensus )"일 뿐이라고 빈정거렸다.
79년 정권을 인수한 대처 또한 이같은 합의정치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발언들을 서슴지 않았다.
대처는 79년 선거기간중 합의라는 단어는 "압력단체에 대한 유화적
추파에 불과할뿐 아니라 주요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미적미적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그를 두고 노팅검 대학의 데니스 캐바노 정치학교수는 "대처리즘과
영국정치"라는 최근 저서에서 그를 일컬어 "나는 나"라고 말할수 있는
그런 여자( She is what she says she is )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대처리즘( Thatcherism )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우선 주의(주의: ism )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과연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그러나 대처와 그녀의 정치를 오래 관찰해온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영국인들은 대처리즘을 콘센서스라는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개인의
신념과 원칙을 실천할수 있는 용기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이념적
사고"로 정의한다.
대처주의는 이 한가지 정의만 가지고도 하나의 독립된 주의로 취급될수
있는 충분한 의의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IMF라는 뜻하지 않은 어려운(?)손님과 같이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대처리즘만큼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것도 없다.
지도자의 신념과 희생이 그만큼 요구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위크( BusinessWeek )는 한국경제의 큰 문제점을 네가지로
요약한 적이 있다.
경직된 관료주의,대기업들의 무모한 중복투자, 과격한 노조, 취약한
금융부문이 그것이다.
이 보도에 대해 한 외신기자가 보인 반응에는 많은 시사가 담겨있다.
"잘 정리된 분석이긴 하지만 세가지 중요한 요인이 빠져 있다.
한국경제가 몰락한 것은 정치인과 언론인, 그리고 경제학자(?)들
때문이다" 국론을 한 곳으로 몰아주기 보다는 양비와 양시를 일삼으며
책임회피를 위한 뒷구멍 파기에 급급한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곤경에
빠졌다는 시각이다.
우리사회에 정작 필요한 것은 대처와 같은 확실한 신념과 용기가 있는
지도자라는 뜻이다.
물론 김영삼정부가 무언가 단안을 내리려 해도 야당이 이를 사사건건
정치적 당리당략의 야전장으로 만든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의
기억이다.
노사개혁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해 현정부는 노사위원회의 견해와 여러 의견을 모아 단안을 내리고
야당의 협조를 구했다.
야당이 반대했던 것은 물론이다.
여당은 미룰수 없는 사안이므로 국회에서 이를 표결처리하려 했다.
표대결에서 밀릴 것으로 판단한 야당이 실력저지(?)하겠다고 했고 여당은
이를 피해 날치기 처리해버렸다.
결국 정치권은 국민을 실망시켰고 나라의 가장 중요한 현안을 미완의
휴화산으로 만들어버린 현장이었다.
다수결은 갈등이 있는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기 위한 민주주의의
원칙이자 수단이요 대전제다.
이런 민주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기 정부도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을 면할수 없다.
대처와 김대중.
대처리즘을 한국땅에 그대로 옮겨놓으면 자칫"독재"로 비쳐질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당선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우리 모두는 우려와 희망이
뒤범벅이 된 심리상태로 지켜보고 있다.
IMF 시대를 맞아 두사람의 정치철학과 신념, 그리고 희생정신을
중첩시켜보는 우리들의 기대는 그 어느때보다 크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