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에 자금지원을 요청한 직후인 지난 2일 원주
의료원 노조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단을 내렸다.
쓰러져가는 병원을 살리기 위해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연월차수당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98년 임금을 동결키로 한 것.
노사가 회사살리기에 나선 것은 원주의료원 뿐이 나이다.
노동부 잠정집계에 따르면 IMF시대를 맞아 이달 들어 3백83개 업체 노사가
화합을 통해 회사를 살리고 경제를 살리기로 다짐했다.
이 가운데 1백99개 업체 노사는 98년도 임금을 동결키로 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감원하지 않기로 합의한 사업장도 있고,
상여금을 반납하고 경비를 절감키로 한 곳도 있다.
따져 보면 하루 평균 20개에 근접하는 사업장에서 노사가 경제살리기
다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경제살리기 열풍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일터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불안요소는 남아 있다.
민주노총의 배석범 위원장직무대리는 27일 고용보장촉구대회에서 "경제
파탄 주범을 처벌하고 기업인들이 고통분담에 앞장서야 한다"면서 "이런
노력없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한다면 총파업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전날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고통분담을 둘러싸고 노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사업장도 있다.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 26일 조합원들에게 보낸 통신문에서 그룹
측이 밝힌 경영난 타개방안에 반발, 단계적으로 투쟁을 벌인다고 밝혔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노동계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고 경제주체들의 "공평한" 고통분담도 중요
하지만 지금은 결코 파업을 거론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거듭 주장한 노사정 사회적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주체들이 고통분담에 합의하고 노사가 화합해 경제살리기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을 덜 분담하려고 싸우다보면 경제파탄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홍익대 경제학과 박래영 교수는 이와 관련, "노동계 지도부가 결단을 내려
고통분담에 동의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조합원들을 위하는 길이다"고 강조
했다.
또 "노동계가 고통분담을 거부, 국가경제가 파탄하면 근로자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단>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