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19일 "경제살리기 정책자문단"을 구성, 차기 정부가
최우선으로 다루어야할 경제정책의 방향을 주제로 제1차 토론회를 가졌다.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은 차기정부 특히 김대중 당선자가
대외신뢰도 회복을 위해 확고하고도 솔직한 자세를 보일 것을 주문했다.

외환위기가 겉으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한 자문단은 현상황을 자칫 잘못
관리하다가는 외국의 불신감만 높여 국가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경영과 관련, 과거의 관습과 틀에서 탈피,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
하다고 지적한 자문단은 부실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정리, 정부조직 개편 등의
작업이 신속하고도 과감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개혁이 정권초기에 마무리되지 못하면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는 과거의
선례를 감안해 볼때 개혁추진일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입을 모았다.

자문단은 또 IMF협약준수 선언, 외환위기 타개 청사진 제시, 경제팀 조기
발족, 부실금융기관의 신속한 정리 등도 차기정부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로 열거했다.

자문단의 토론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했다.

< 편집자 >

=======================================================================]

[[[ 신뢰도 회복 ]]]

당장 발등의 불인 외환부족을 메우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은 물론
외국인들의 불신을 없애는데 주력해야 한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신뢰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경제사정이 좋을 때는 기업이든 금융기관이든 차입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입금이 자기자본보다 과도하게 많은 기업들은 사실상
부도에 직면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차입금 상환을 요구하면 도리없이 부도를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럴때일수록 기업과 금융기관 사이에 신뢰가 확고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 이러한 신뢰의 기반이 확실히 무너졌다.

기업을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상위 대기업들조차 외국금융기관에서 빌려온 단기채무를 매일
매일 힘겹게 갚아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은 단순히 개별 기업의 문제라기 보다는 국가경제 전체의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해외에서는 한국 기업에 대해
일절 신용거래를 하지 않으려 한다.

외국투자자들도 마찬가지로 한국기업을 외면하고 있다.

이번 위기로 한국이 그동안 실속없는 성장에 그쳤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이것이 국내기업의 신뢰도를 추락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경제는 하루가 급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외신인도 회복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조치들이 절박하다.

무엇보다도 김대중 당선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이미 천명했듯이 IMF 협약
내용을 준수할 것이라는 점을 외국인들에게 확고하게 심어 줘야 한다.

이를위해 대통령 당선자가 IMF관계자등을 만나 이같은 의지를 거듭 확신
시켜줄 필요가 있다.

또 대통령 당선자는 당장 국정,특히 경제분야에 대한 인수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어차피 IMF 협약은 차기정권이 수행할 일이므로 대통령 당선자가 국정
전반을 사실상 관장하게 되면 그만큼 외국인들의 불안심리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나 국민들 개개인의 노력도 절실하다.

자금경색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외국거래선에는 아무런 염려가
없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은 결국 그 기업은 물론 다른 모든 기업에 대한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솔직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것을 국치라고 받아들이는등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불신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같은 감정적 반응은 IMF 관리체제에 우리경제의 회생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 우리경제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진지하게 반성하고 돌파구를 모색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더구나 국민들의 고통분담은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IMF체제 극복을 위한 국민들의 합의를 도출해 내고 이를 실행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동안 정부가 국민들의 합의를 제대로 이끌어 내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보인 것도 대외신뢰도를 떨어뜨린 요인이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부실 금융기관 정리 ]]]

부실금융기관 정리등에 대한 정부정책이 우선 투명해야 한다.

철저히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회생가능성이 없는 금융기관은 과감히 폐쇄
조치하는 것이 대외신인도를 높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대해 정부출자를 통해 국책은행화한후
외국계은행에 매각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부실은행을 껴안고 가는 것은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이들 은행을 폐쇄조치할 경우 실업은 물론 신용경색 등으로 기업의
연쇄부도 등이 우려되긴 하지만 대외신인도 추락에 따라 국가파산으로
내몰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사실 정부는 지금까지 종금사에 대해서는 절반가까이 영업정지처분을
내렸으면서도 은행에는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내보이는등 부실금융기관
처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따라서 분명한 기준을 마련, 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다만 회생가능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부실은행은 가교은행을 통해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금융기관등에서 조달하기 어려우므로 어차피 국민의
부담이 늘더라도 정부가 재원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원마련 방법은 상당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막대한 국채를 발행할 경우 상대적으로 민간부문의 채권수요는
그만큼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부실이 신용공황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자금확보
통로가 막히다 보면 결국 연쇄부도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산업 구조조정 촉진 ]]]

대외신인도 회복은 물론 우리 경제의 회생 여부는 결국 산업의 구조조정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IMF의 요구에 따라 어차피 M&A시장이 대폭 개방되는 만큼 M&A를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M&A시장이 개방되면 국내기업의 경영권 보호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우호적 M&A는 물론 적대적 M&A도 전향적으로 허용하는 편이 바람직
하다.

M&A는 기업의 자원배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M&A를 통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M&A가 쉽지 않았다.

최근의 경제위기가 재벌의 비효율적인 경영행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은 만큼 구조조정은 물론 기업의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도 M&A를 전면적
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

외국기업에도 M&A시장을 개방하면 선진경영기법을 배울 수 있는 등 실보다
는 득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국내기업들이 EVA(경제적 부가가치)경영 등으로 경영의 효율성이
높아진 상태에서의 M&A는 그 효율을 더욱 배가시킬 수 있다.

우호적 M&A는 국내기업들 사이에 사업구조개편을 용이하게 하는데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기업정리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외국자본을 국내에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외국기업의
우호적 M&A는 반드시 필요하다.

적대적 M&A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적대적 M&A가 허용되면 경영상의 인센티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기업이나 종업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하더라도 적대적
M&A로 하루아침에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감때문에 기업들이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 할 소지도 적지
않다.

M&A의 전면적 허용이 원론적으로는 옳다해도 현실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대적 M&A를 전면 허용하기에 앞서 국내기업들이 어이없게 경영권
을 빼앗기는 경우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각종 관련법률의 정비작업도 필요
하다.

하지만 부실기업을 M&A라는 수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특별한 이유없이 어느 누구도 부실기업을 인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이다.

따라서 M&A의 주대상은 바로 우량기업이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지금처럼 알짜배기 계열사를 끝까지 끌어
안고 있어서는 계열사 정리를 통한 구조조정에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부실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구조조정과정에서 비용부담 문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정립돼야 노동자들도 임금삭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세금인상이나 예산축소등 정부정책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 경영 투명성 제고 ]]]

IMF의 요구에 따라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와 국제적인 회계감사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하게 됐다.

금융기관 부실 원인이 과다한 차입경영에 의존하는 국내 대기업의 재무
구조상 문제 때문에 촉발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각종 제도 도입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회계기준을 국제기준에 맞추려다 보면 상당한 혼란과 충격이 예상
된다.

정부가 일정을 사전에 분명히 밝혀 기업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배려
해야 한다.

또 출자총액제한이나 여신관리등 각종 규제는 없애야 한다.

다만 기업들의 사정이 어렵더라도 채무보증은 완전해소를 목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기업들의 재무관리는 교과서적 원론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 기업 금융기관 모두가 원칙을 너무 등한시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위기
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소수주주 보호와 경영감시체제 강화를 위한 집단소송제 사외이사제
등 각종 제도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 중장기 정책비전 ]]]

최근의 경제위기는 단기적으로 외환부족 때문에 초래된 것이지만 비효율적
인 경제구조가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오랫동안 고비용 저효율구조 타파를 외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해 오지 못한게 사실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마스트플랜을 조속히 마련해 이를 기본틀로 삼아 정책을
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경제는 비효율적인 경제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회들은 많았다.

하지만 우리경제가 어려울때마다 해외의 호재로 되살아나곤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절박감을 느끼지 못해 번번히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70년대는 중동특수로 성장의 기회를 잡았고 88년이후부터는 우리나라
상품이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음에도 세계수요의 급증으로 호황을 누렸다.

이러다보니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적 배려가 있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자본시장이 급격히
개방되기 시작했다.

자본시장 개방은 상품시장 개방과는 성격이 다른데도 정부는 이에대한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장기적인 정책기조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하루하루가 다급하긴 하더라도 IMF 관리체제이후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고나서 구체적인 정책을 펴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당장 급하다고 단기적이고 대증적인 정책을 쓰다보면 오히려 대외신인도
제고에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정책들중 외국인에 대한 M&A시장 개방만 하더라도
구조조정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이긴 하지만 기업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이어서 아쉬움이 있다.

국내기업의 숨통은 그대로 조여놓은 상태여서 정작 국내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그동안의 근시안적 정부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

예컨대 아파트분양가 자율화만 하더라도 택지공급이나 금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아파트가격 상승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정부조직 개편 ]]]

국내 금융기관들이 오늘날 부실덩어리로 전락하고만 것은 그동안 정부의
관치금융 아래서 자생력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정경제원의 해체.분리작업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과거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단순 통합하다보니 지금와서는 거대한
골칫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재경원 뿐아니다.

통상산업부 등 경제부처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작업이 필요하다.

정부조직이 유연하지 못하면 최근처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안일한
자세로 일관하거나 실기하는 난맥상만 거듭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조직 개편은 곧바로 규제혁파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부처의 몸집이 가벼워질수록 규제도 자연 폐기될 수밖에 없다.

파킨슨법칙에 따라 규제는 규제를 낳는다.

경제의 효율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경제활동을 최대한 보장해 자본주의
본래의 정신을 되살리는 길 밖에 없다.

[[[ 금융실명제 보완 ]]]

재계는 실명제때문에 장사를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장롱속에 숨겨둔 검은 돈들이 지하로 숨어들면서 자금줄이 더더욱 막혀
버리는 결과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실채권정리등을 위해 앞으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금융실명제를 보완해 무기명 장기채권을 발행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금융실명제의 보완에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정부가 금융실명제의 골간을 깨는 무기명 장기채권을
발행한다해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책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지하자금이 바깥으로 나온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무기명 장기채권 발행은 기업의 비자금이나 정치자금의 돈세탁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어렵사리 실시한 금융실명제만 사실상 폐기처리되는 결과를 낳고말 가능성
이 높은 것이다.

지금은 차라리 자금세탁방지법 도입을 서둘러야 할때다.

정부의 재원확보는 조세체계의 정비와 재정을 통한 기금확충으로 해결하는
편이 차라리 바람직할 것이다.

[[[ 기타 ]]]

정부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기업도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부실한 대기업이나 금융기업을 파산시키지 못하고 어물쩡거린 것이
대외신인도 추락을 부추겨 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발상전환이 절실함을 의미
한다.

이같은 발상전환은 노동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통령 당선자는 물리적인 형평이 아니라 효율적인 형평이라는 측면에서
노조에 정리해고제 등의 도입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해고나 근로자파견 등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불가피한
제도들인 만큼 기업들의 악용소지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행정개혁과 함께 조세개혁도 필요하다.

조세개혁은 서둘러 할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 준비를 거쳐야 하고 사후관리
도 철저히 해야 한다.

공평하고 책임있는 조세체계가 갖춰지면 건전소비풍토가 정착될 것이고
국가경쟁력도 제고될 것이다.

국가경쟁력이란 결국 국민 기업 정부, 각 부문의 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안정도 중요한 사안이다.

국정을 공동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공약으로 내세운 내각제 개헌도
경제위기 수습을 위해 1년동안 연장할 필요가 있다.

내각제 개헌과정에서 정치가 불안해지면 결국 우리나라에 대한 신인도만
떨어지게 돼 경제사정이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