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던 사람이 마흔살이 다 돼서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걱정 반 의구심
반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걱정을 덜고 영화에 매진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로 꼽힌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감독은
"쟁쟁한 중견감독을 제치고 영광을 안게 돼 죄송한 동시에 늦깎이 후배를
푸근하게 받아준 영화계 인사들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초록물고기"는 깡패를 등장시킨 액션 느와르와 3각관계라는 멜로의 틀을
빌려 70~90년대 우리 사회의 변모를 그린 영화.

공장과 유흥가가 가득한 영등포와 90년대의 "신세계"인 일산을 대비시켜
사회변화와 그속에서 잃어버린 것들(가족 꿈...)을 얘기했다.

이씨는 특히 "한국적 리얼리즘의 맥을 이었다"는 평을 들어 "기쁘다"고
말했다.

"리얼리즘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전통적인 영화관이라고 봅니다.

사회에 대해 자기몫을 해야 한다는 선비정신과도 연관있죠.

90년대초반에 단절된 그 흐름이 "초록물고기"에서 다시 이어졌다는
평가는 그래서 극찬이라고 생각합니다"

꽤 알려진 소설가가 영화를 연출한 것은 이감독이 세번째.

"감자"의 김승옥, "걷지말고 뛰어라"의 최인호씨가 선배들.

영화계에서 이감독을 높이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선배들과 달리
충무로식 도제수업을 거쳤다는 것.

그는 "그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와 조감독, "전태일"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5년동안 영화계에서 지냈다.

"초록물고기"는 밴쿠버 런던 데살로니키(그리스) 등 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받았다.

특히 밴쿠버에서는 전체 1백87편가운데 최고 5위안에 꼽히는 수확을
거뒀다.

지금 이감독은 다음 작품의 시나리오를 준비중이다.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초록물고기"보다 상업성이 조금 덜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