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정부수립 이후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투표의 날을 맞았던가.

그중 어느 한번인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시시한 선거야 있었으랴만
오늘만은 정말 다르다.

우리가 당면한 시국은 한치도 여유가 없어 국민중 일부만 뒤로 빠져도
나라꼴을 비참하게 만들 중대한 위기이며 여기 국민 하나하나가 발휘할
최소한의 애국심은 투표장에 나가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우리는 믿는 것이다.

아마도 개중엔 1~3번뿐 아니라 4~7번후보 몽땅을 들여다 봐도 바로
이 사람이라고 성에 차는 사람이 없다는, 기권의 합리화를 준비한 유권자가
상당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귀따갑도록 들어온 소리처럼 선거란 최선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배우자 선택에서도 흔히 보듯 인생사의 본연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좀더 깊이 생각하면 원천적으로 정치마당이란 것이 인격-능력 다 갖춘
현자들이 나설수 없게끔 제도적 결함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이 점은 분명 하나의 연구과제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으론 당내 경선부터 본선에 이르는 대선과정에 문제가
있다.

후보자 각자가 국민앞에 자신의 능력과 소신을 밝혀서 표를 모으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경쟁자를 깎아내려 그로 하여금 표를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상인듯 본말이 전도된 현실에서 원인을 찾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어느나라 선거도 전혀 그렇지 않은 곳은 없다.

하지만 한국의 선거사는 거듭하면 할수록 그런 병을 고쳐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세가 도지는게 문제이고, 그 절정이 이번 대선이라고
널리 공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오로지 그 이유가 처음으로 본격화된 TV선거의 미숙 탓이라면 그래도
전망은 있다.

그러나 만일 그게 아니라 우리 국민성에 더 깊이 연유한다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 대안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같은 검토-분석 과정은 투표를 머뭇거리는 유권자들의 결심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만일 최근 거듭된 TV토론을 시청한 결과로도 후보별 우열판단에 스스로의
기준을 종잡을수 없다면 자기얘기보다 타후보 비방에 더 많은 신경을 쏟은
후보를 가려 감점을 주는 것이 합당하리라 본다.

무엇보다 그런 인품이라면 자신의 책임을 옆으로 아래로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하며 단연 지도자로선 결격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후보가 없다고 해서 기권하는 유권자가 늘어날
경우 타인비방에 특기가 있거나, 득표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말을 바꾸는
위인들이 갈수록 득세하고 당선되는 모순이 생겨난다.

또한 나라일 잘못을 몽땅 정치와 정부에 돌리는 사람일수록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모두 시정돼야할 현실이다.

우리가 어떤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가는 평범한 교훈을 되새김으로써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교언영색 선의인, 즉 말을 교묘히 하고 낯을 좋게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된
사람 드물다는 경구에서 깊은 뜻을 찾을수 있으리라.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