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기계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환율인상의 여파로 외국산기계 도입을 위한 발길이 뚝 끊어진 반면 국산
기계 도입문의가 급중하는 추세다.

업계는 이를 두고 "IMF합의 이후 처음으로 나타나는 희망적인 현상"이라며
반가워한다.

이같은 국산기계도입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문은 정밀가공기
분야.

와이어커팅기를 비롯 워터제트 머시닝센터 레이저가공기 등 부품을 가공
하는 기기류의 국산선호도가 가장 높아졌다.

특히 그동안 외국산기계의 도입을 위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해 외화대출
을 신청했던 업체중 대영정공시스템 등 1백38개사가 대출승인을 받고도
대출을 포기하거나 유보했다.

이들 1백38개사는 대부분 독일 일본 미국등으로부터 각종 자동화설비를
들여올 예정이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국내 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중진공측에 밝혀 왔다는 것.

그동안 수입가공기와 경쟁해온 와이어커팅기 생산업체인 고려테크노의
박유광 사장은 모처럼 밝은 얼굴이다.

11월이후 환율이 급등하자 3개업체에서 국산기기의 도입을 신청해 왔기
때문.

시화공단에 있는 서울상역도 주철관용 이음쇠의 주문이 갑자기 밀려들어
희색이다.

이 제품도 그동안 국산화를 해놨는데도 업계에서 미국과 독일제품을 선호
하는 바람에 잘 나가지 않던 기기.

그러나 국산기기를 도입하고 싶어도 자금부담을 느껴온 업체들은 연합할부
금융의 기계할부금융을 활용, 대거 국산기계도입에 나섰다.

이들도 대부분 당초엔 외국기계를 도입하려던 업체.

동양산업(대표 박재덕)은 최근 현대정공이 제작한 1억6천3백만원짜리
사출성형기를 할부금융을 통해 도입키로 계약을 맺었다.

대양편직(대표 권성환)도 금용기계로부터 섬유제조설비를 들여오고
파주기계(대표 김영선)는 대성기계공업으로부터 톱기계를 도입했다.

우성정밀(대표 김문희) 연합기계(대표 홍희재) 화신산업(대표 손석수) 등도
이달들어 국산공작기계를 들여놨다.

정책자금으로 외국산기계의 도입을 추진하던 기업들도 계속 발길을 돌리고
있는 상황.

인천에 있는 대성전관(대표 이상욱)을 비롯 한국큐빅(대표 최창수)
대한데이타시스템(대표 조옥환) 등도 정책자금으로 국산기계를 설치했다.

이들이 국산기계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은 기존 외국기계도입업체들이 환율
인상에 따른 금융비용증가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점을 고려해서이다.

이미 기계를 도입한 업체들은 대부분 변동환율을 적용받아 더욱 난처한
입장.

신규도입을 원하는 기업들로서도 앞으로 IMF 합의체제가 확립되면 환율이
다소 인하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현재로선 더욱 외국산기계의 도입을
기피하는 실정.

유리가공업체인 대산은 이탈리아로부터 4억원상당의 가공기를 도입키로
계약을 맺었으나 환율인상으로 설비자금부담이 갑자기 늘어나 도입을 포기
해야 할지 계약금을 날리고서라도 국산기계를 써야 할지 망설이는 중이다.

더욱이 이회사는 이미 공장에 부대설비와 주변기기를 도입해 놓은 상태여서
완공일정만 늦춘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밝힌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앞으로 국산기계의 선호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업계의 한결같은 전망.

업계는 이런 시기에 국산기계업체들도 과감히 품질수준을 높여 시장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0일자).